방송인 최인락.

(부산=NSP통신) “메르스 신규 확진도 사망(死亡)도 ‘0’, 김광한 타계(他界), 오마샤리프 별세(別世)...”

최근 기사에 난 여러 죽음을 다룬 기사 제목들이다.

보통사람인에게는 사망(死亡), 유명하거나 존경받았던 인물에게는 타계(他界)나 별세(別世)라는 표현을 흔히 쓴다. 지도자급 인물에게는 서거(逝去)라고 한다.

모든 생명은 고귀하고, 만인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하나 이처럼 죽음 앞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말 높임법 체계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


◆ 우리말 어휘는 높임말이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한국어는 언어보편적인 속성과 함께 개별적인 특징도 가지고 있다. 한국어 어휘는 다양한 유의어와 동음이의어가 존재하며, 대우표현의 어휘, 2, 3, 4음절어 그리고 감각어와 상징어가 발달했다. 또 고유어와 한자어, 외래어가 존재하며 한국의 전통적인 사회, 문화적인 특징을 반영한다.

한국어는 특히 대우표현의 어휘 즉 어휘가 지시하는 대상이나 행위와 관련되는 인물에 대한 대우를 달리하는 어휘가 발달했다. 학자들은 그 배경을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유교적 환경과 수직적 인간관계에서 찾기도 한다.

우리말 어휘를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는 한자어다. 한자어는 주로 전문적이며 특수한 경우 그리고 존경 표현의 감정 가치를 나타낼 때 주로 쓴다. 따라서 한자어는 고유어에 비해 높임말로 쓰인다. ‘집’을 ‘댁(宅)’으로, ‘나이’를 ‘연세(年歲)’로, ‘이’를 ‘치아(齒牙)’로 표현하는 것 등이다.

집안의 어른이 세상을 떠나면 ‘죽었다’는 표현보다는 ‘돌아가셨다’는 표현으로 높인다. 그런데 국가의 지도자 등이 세상을 떠나면 ‘서거(逝去)’라는 표현으로 최대한 경의를 나타낸다.

같은 한자어라도 대상 인물이 지닌 비중에 따라 표현이 달라진다. 앞서 예로 든 것처럼 보통사람에게는 사망(死亡)을, 유명인에게는 ‘별세(別世)’나 ‘타계(他界)’를 써서 대우를 달리하고 있다.

‘별세(別世)’는 윗사람이 세상을 떠난 경우에 쓰는 높임표현이다. 따라서 젊은이의 죽음과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었으나 요즘에는 배우나 가수 같은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젊은이에게도 쓰고 있다.

별세(別世)로 표현하기에 부족하다 싶을 때는 더 높이는 말로 서세(逝世)를 쓰기도 한다.


◆ 어휘를 가려 써야 하는 이유

때로는 다른 이의 죽음을 잘못 표현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김태호 국회의원이 연평해전 13주년을 맞아 “다시는 우리 아들, 딸들이 이런 개죽음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개죽음’이라는 표현을 써서 논란이 된 적도 있다. ‘개죽음’은 ‘아무런 보람이나 가치가 없는 죽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서 사람의 죽음을 다소 낮춘 표현으로 쓴다. 비록 김 의원 발언의 맥락이 연평해전 전사자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는 하나 여론은 '개죽음'이라는 표현 자체를 적절치 않았다고 본 것이다.

군인들의 죽음은 의미가 각별한 경우가 많다.

박민식 국회의원의 선친은 월남전에서 산화(散華)한 고(故) 박순유 중령(맹호부대)이다. 이때 ‘산화(散華)’는 ‘꽃잎처럼 흩어지다’는 의미로 군인이 전장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경우에 쓴다. 꽃다운 젊음이 적의 총탄 앞에 장렬히 사라지는 모습을 꽃잎이 흩어지는 것에 비유한 이 말은 왠지 가슴이 뭉클하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순국(殉國)이나 순사(殉死), 전몰(戰歿)이 있다. 또 전망(戰亡)이 있기는 하나 그 쓰임새가 덜하다.


◆ 한자어에 나타난 계급(?)

‘단현(斷絃)’이라는 표현도 있다. ‘현악기의 줄이 끊기다’는 이 말은 ‘금슬(琴瑟)의 줄이 끊어졌다’는 뜻으로 아내의 죽음을 이른다. 아내를 잃은 남편의 애틋한 마음이 잘 드러나는 표현이다.

순절(殉節부인이 남편의 뒤를 따라 죽음)이나 미망인(未亡人아직 따라 죽지 못한 부인)에서는 성차별이 드러나기는 하나 여성의 권리가 향상된 요즘에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다.

남녀만 차별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신분에 따른 차별도 있다.

사망(死亡)은 보통사람의 죽음을 가리키며 불록(不祿)은 선비의 죽음을 이른다. 관리가 죽으면 졸(卒)을, 왕이나 왕족, 귀족에게는 훙거(薨去) 또는 훙서(薨逝)를 썼다. 승하(昇遐), 등하(登遐)가 임금의 죽음인데 비해 천자나 황제의 죽음은 붕어(崩御)와 훙어(薨御)라고 불렀다.

반면에 물고(物故)는 표현은 죄인(罪人)의 죽음이다. 물고와 붕어의 차이는 그야말로 천양지차였으니 죽음에도 계급이 있다고 할 만하다.


■ 보통사람의 꿈, 와석종신(臥席終身)

종교에 따라서도 그 표현이 각기 다르다. 개신교에서는 죽음을 소천(召天)이라 하여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고 표현한다. 불교에서는 열반(涅槃), 입적(入寂), 귀적(歸寂), 입멸(入滅), 천화(遷化)를 쓰고 천주교에서는 선종(善終)이라 하는데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생을 마친다’는 뜻의 ‘선생복종(善生福終)’을 줄인 말이다.

와석종신(臥席終身)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이 내린 목숨(命)을 다 살고 편안히 죽는 것’을 가리키는 이 옛말은 신조어인 ‘웰 다잉(Well dieing)’을 떠올리게 한다.


*필자는 부산외국어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한국어교육을 공부했으며, 방송인으로서 부산MBC ‘별이 빛나는 밤에’, TBN 한국교통방송 ‘낭만이 있는 곳에’ 등을 진행했다. 현재는 방송, SNS 등에 쓰이는 매체언어를 관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옴니암니’는 ‘다 같은 이(齒牙)인데 자질구레하게 어금니 앞니 따진다.’는 뜻으로, 아주 자질구레한 것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매체들의 사소한 표현을 소재로 우리말을 보살피는 길을 함께 고민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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