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NSP통신) 제20대 총선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모두 조직정비에 한창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3일 최재성 사무총장 등 주요 당직자 명단을 발표했지만 계파갈등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새누리당 역시 인선을 위해 고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데 최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이 대변인 인선을 앞두고 ‘사투리를 쓰지 않을 것’을 전제 조건으로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전통적으로 영남에서 강세를 보여 온 새누리당의 대변인에 어떤 인물들이 포진할지가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 대변인(代辯人)은 정당의 ‘입’이자 ‘얼굴’
대변인(代辯人)은 ‘어떤 사람이나 단체를 대신하여 의견이나 태도를 표하는 일을 맡은 사람’이다.
대변인을 소재로 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대변인이 동성(同性)일 경우에는 뛰어난 인물보다는 평범한 인물을, 반대로 이성(異性)일 경우에는 평범하기보다 뛰어난 인물을 유권자가 더 선호한다는 실험결과다. 또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의 대변인이 평범한 이미지일 때 오히려 거부감이 덜하다고 한다.
정치에서 대변인의 비중은 유권자의 정당지지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 크기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대변인들은 각 정당의 사활이 걸린 ‘총선 전투’에서 최일선에서 벌어지는 공방을 담당하는 한편 당의 정책을 알리며 중요 사안을 유권자에게 알리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따라서 TV등 언론매체를 통해 수시로 노출되는 대변인은 논리적인 언변은 기본이며 유권자에게 호감을 주는 외모가 구비조건이다. 여기에 더해 새누리당에서는 새 대변인의 조건으로 ‘사투리를 쓰지 않을 것’을 추가했다.
물론 사투리를 쓰는 정치인은 그 나름으로 장단점이 있다. 지역 유권자의 지지를 다잡기 위해서는 적절한 방언의 사용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전체 국민에게는 자칫 지역당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어 마이너스가 된다.
말하자면 새누리당으로서는 영남(嶺南)이 지지기반이라는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나 수도권공략을 위해 탈(脫)사투리를 대변인의 조건에 추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김무성 대표가 ‘표준어 구사’를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고 ‘사투리를 쓰지 않는’이라고 말한 배경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출신지역이 수도권이 아니더라도, 소통을 위해 ‘사투리를 쓰지 않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구체적으로는 경상도 출신일지라도 경상도식의 어휘 사용이나 발음이 심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읽을 수 있다.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영남지역의 유권자를 배려하는 동시에 수도권 유권자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절묘한 포석인 셈이다.
◆ ‘펜안허우꽈?’, ‘시상베랬잖니껴’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투리는 ‘어느 한 지방에서만 쓰는, 표준어가 아닌 말’로 정의했다. 또 표준어는 한 나라에서 공용어로 쓰는 규범적 언어로, 의사소통의 불편을 덜기 위하여 전 국민이 공통적으로 쓸 공용어의 자격을 부여받은 말이라고 했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가 채택한 표준어는 서울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정확하게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다. 서울이라고 지역을 한정하기는 했지만 수도권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서울말’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표준에서 벗어난다거나, 교양이나 품위가 없다는 주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다. 또 통합의 차원에서 언어를 표준화하자는 주장 즉 방언을 쓰면 지역색이 강해져 지역감정이나 차별이 심해진다는 것도 억지다.
각 지방마다 민요에 나타난 정서와 감정이 다르듯이 말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 같은 사물에 대한 어휘도 지방마다 다르며 같은 어휘를 표현하는 발음과 억양에도 크고 작은 차이가 존재한다.
그런데 문화로서 사투리와 의사소통도구로서 사투리는 별개의 문제다. 말을 하고 듣는 환경이 고려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공사(公私)의 구분이 이루어져야 한다. 공적인 자리에서 저마다 출신지역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했을 때 발생하는 혼란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비약이기는 하지만 국회의원이 자신의 출신지역 사투리로 대정부질의를 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또 그 질문에 대해 답변하는 장관이 자신의 출신지역 방언으로 답변을 한다면 어떨까? ‘펜안허우꽈?’, ‘시상베랬잖니껴’를 해석하기 위해 국민들은 스마트폰을 곁에 두고 있거나, 통역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국민을 대표한 국회의원들이 표준어휘와 표준발음을 사용하여 공적인 활동을 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으로 국민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품위와 문화의 우열을 따지는 차원이 아닌,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사투리 사용의 자제는 필요하다.
매체가 발달함에 따라 젊은 세대에서 기성세대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의 심한 사투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경상도 사람일지라도 어휘만큼은 표준어휘를 쓰고 있어 사투리 사용으로 인한 의사소통의 불편함은 사라졌다.
다만 몇몇 어휘와 발음에 어려움을 겪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경상도 출신의 취업준비생들이 면접을 대비해 사투리를 교정하고 표준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을 다녀야 하는 것이 지역의 현실이다. 부모님에게서는 물론 12년 이상이나 다닌 학교에서조차 배우지 못했던 표준발음을 말이다.
그런 면에서 김무성 대표가 강조한 (경상도식)사투리 사용자의 대변인 배제 방침은 정계는 물론 교육계, 경제계 등 우리 사회 전반에 나비효과로 작용할 것으로 보여 ‘귀취(歸趣)’가 주목된다.
*필자는 부산외국어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한국어교육을 공부했으며 방송인으로서 부산MBC ‘별이 빛나는 밤에’, TBN 한국교통방송 ‘낭만이 있는 곳에’ 등을 진행했다. 현재는 방송, SNS 등에 쓰이는 매체언어를 관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칼럼의 제목 ‘옴니암니’는 ‘다 같은 이(齒牙)인데 자질구레하게 어금니 앞니 따진다.’는 뜻으로, 아주 자질구레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매체들의 사소한 표현을 소재로 우리말을 보살피는 길을 함께 고민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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