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월간문학(月刊文學)이 발간한 박정희 선생의 수필집 ‘그리운 시절 마이 러브 마이 라이프’. (월간문학출판부 제공)

(서울=NSP통신 안정은 기자) = [편집자 주] 월간문학(月刊文學)이 全日신문 동경특파원을 지낸 시인이자 수필가 월포(月浦) 박정희 선생의 인생 스토리를 담은 에세이 ‘그리운 시절 마이 러브 마이 라이프’를 발간했다.

박 선생은 이 책 속에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 얽힌 그의 가족사를 통해 두 나라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지내왔다는 것을 작게나마 알리려는 노력을 담았다.

당사는 비록 작은 개인사, 가족사에 불과할지라도 결국 작은 가족사들이 모여 한 나라의 흐름이 결정되지는 않을까 하는 저자의 마음을 담아 이를 연재한다.


[적벽가와 옛 이야기에 능하신 진주 한량, 나의 외할아버지 (후편)]


“네, 할아버지.”

입 안 가득 커다란 눈깔사탕을 굴려 먹던 나는 한 쪽 볼에 사탕을 몰아넣고 대답했다.

“할애비가 재미난 얘기 하나 해 주랴.”

옛날이야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던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할아버지는 빙긋 웃으셨다.

“옛날 옛날에 어느 마을에 해마다 쌀을 만 석이나 하는 부잣집이 있지 않았겠니. 온 마을 사람들이 그 집 땅을 부쳐 농사를 지어 먹고 살 정도였으니 그 위세가 참으로 대단했지. 그런데 어느 날 그 집 주인양반이 세수를 정히 하고 들어와 보니 몸종이 들여놓고 간 밥상에 웬 고양이 한 마리가 턱하니 올라앉아 있는 게야.”

“고양이가요?”

“그래. 커다란 들고양이 말이다. 아 글쎄 그 들고양이가 주인이 제일 좋아하는 굴비를 통째로 입에 물고 뜯어 먹고 있더란 말이야. 주인이 노발대발해서 그 놈을 담뱃대로 내려쳐 쫓아냈지. 그런데 이를 어쩔꼬, 하필 담뱃대가 고양이 한 쪽 눈을 찍는 바람에 그 놈은 애꾸눈이 돼 버리고 말았던 게야. 주인은 ‘고연 놈’ 하고 그 일을 까맣게 잊어 버렸지.”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할아버지의 다음 얘기를 기다렸다.

“아 그런데 수 년이 지난 어느 날 부턴가 그 집에 우환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기 시작한 게야. 식구들이 돌아가며 중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질 않나, 일 년 곡식을 쌓아 놓은 곳간에 불이 나질 않나, 떵떵거리던 집안 기우는 건 순식간이었단다. 주인은 까닭을 알 수 없어 밤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법력 높으신 스님이 계신다는 절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했더랬지. ‘스님, 이렇게 비오니 제발 집안에 닥친 우환을 물리칠 방도를 알려 주십시오. 그리만 해 주신다면 곳간에 남은 쌀을 모두 시주하겠습니다.’ 주인은 눈물까지 흘리며 부탁했단다. 그러자 이를 불쌍히 여긴 스님은 주인을 따라 나섰지. 그리고 그 집에 당도한 것이 해가 넘어갈 무렵이었어.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나지막한 능선을 타고 번져오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할아버지는 말씀을 계속하셨다.

“아 근데 집에 도착하고 보니 온 집안에 까닭 모를 살기가 등등해 소름이 오싹 끼치더란 거야. 스님은 집 주변을 천천히 돌며 구석구석 살펴봤단다. 그러다 바닷가 건너 야산 꼭대기에 눈이 갔는데 아 글쎄 거기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커다란 불덩이가 그 집을 노려보고 있더라, 이 말이야!”

“부, 불덩이요?”

나는 너무 놀라 하마터면 다 녹이지도 못한 눈깔사탕을 그대로 삼킬 뻔 했다. 다행히 삼키지는 않았지만 놀란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렇다마다. 밝은 대낮에도 훤히 보일 만큼 무시무시한 불덩이였지. 이를 본 스님은 혀를 끌끌 차고는 주인을 불러 집안을 구할 방도를 전했단다. ‘이보오, 내 말을 잘 들으시오. 여기서 십 리 길을 가면 외딴 초가집이 있을 터인데 그 집 주인이 암캐와 수캐, 두 마리와 강아지 세 마리를 자식같이 키우고 있을 거외다. 그 집을 찾아가 돈을 줘 구하든 애원해 빌리든 해 그 개 다섯 마리를 집으로 데려와 길러야 합니다. 만일 그리 못하면 이 집안은 패가망신을 면하지 못할 터이니 내 말 명심하시오.’ 말을 마친 스님은 하룻밤 묵고 가라는 주인의 만류도 뿌리치고 그 길로 절로 돌아갔단다.”

얘기가 점점 흥미진진해지자 나는 사탕 빨아먹는 것도 잊고 얘기에 열중했다.

“그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운 주인은 날이 밝자마자 당장에 스님이 일러 준 집을 찾아 나섰지. 아 그랬더니 정말 십 리 떨어진 초가집에 주인 부부와 암캐, 수캐, 그리고 강아지 세 마리가 오순도순 살고 있는 게 아니겠니. 부잣집 주인은 초가집 주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제발 개들을 팔라며 사정을 했단다. 하지만 초가집 주인은 자식처럼 키우는 개를 팔 수는 없다며 도리질만 쳤지. 마음이 급해진 주인은 그 자리에서 대대로 물려받은 논을 몇 마지기나 떼어준 끝에야 겨우 개 다섯 마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어. 집안의 명운이 달린 일인데다, 집 안에 엉킨 살을 떼어내야 하는 마당에 무언들 아까웠겠니. 어떠냐, 정희야. 재미있느냐?”

두 말 하면 잔소리였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개들을 데려온 날부터 주인은 매일같이 맛난 고기를 푸짐히 주고 잠자리를 봐 주며 지극정성으로 개들을 보살폈단다. 아 그랬더니 어느 날 부턴가 밤만 되면 이 개들이 바다 건너 산꼭대기를 바라보며 짖어대기 시작한 거야.”

흥분한 나는 머리칼이 쭈뼛 설 지경이었다.

“그래서요,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네?”

“보채지 마라. 다 얘기해 주마. 그렇게 밤마다 개들이 짖어대니 조바심이 난 주인은 다시 법력 높은 고승을 모셔와 어찌해야 할지를 물었단다. 과연 밤이 돼 스님이 그 짖는 소리는 들으시더니 이리 말씀하시는 게야. ‘내 말을 잘 들으시오. 오늘 밤 안으로 큰 변고가 생길 터이니 가솔들을 모두 이끌고 지하방에 들어가 꼼짝 말고 있어야 하외다. 행여나 누구 하나 밖으로 나오면 큰일을 치를 터이니 하늘이 두 쪽 나도 밖으로 나와서는 아니 됩니다. 아시겠소? 내 말을 명심하시오.’ 그 말을 들은 주인이 넋이 나가서는 허둥지둥 식구들을 모아 지하방으로 내려가 꼭꼭 숨었지. 그런데 지하방 문을 턱 걸어 잠그자마자 갑자기 비바람이 치고 천둥이 울고 번개가 번쩍번쩍 치고 벼락이 우르릉 쾅 떨어지기 시작한 게야.”

마침 날도 슬슬 어두워지던 참이라 등골이 오싹해진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더욱 힘줘 부여잡았다.

“그리고는 밤이 새도록 개들이 사납게 짖는 소리에 호랑이가 울부짖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단다. 식구들은 서로를 꼭 부여안고 벌벌 떨면서 한숨도 못 자고 밤을 지새웠지. 그리고 아침 해가 떠서야 겨우 문을 풀고 밖으로 나와 봤어. 그래, 정희야. 어찌 됐을 것 같으냐?”

나는 너무나 무서워 눈을 둥그렇게 뜨고 도리질을 쳤다.

“이 할애비가 알려주랴? 오냐, 이 할애비가 알려주마. 그렇게 온 식구가 나와 봤더니 정성껏 돌봤던 암수 개는 물론이고 그 새끼 세 마리마저 죽어 있는 게 아니겠니. 눈을 꼭 감고 혀를 빼 물고 말이다. 그리고 그 앞에는 몇 년 전 주인이 담뱃대로 내려쳐 애꾸가 돼버린 그 커다란 들고양이가 죽어 있었단다. 입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말이다. 결국 데려와 키운 개들이 주인의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 애꾸 들고양이의 액을 대신 막아주고 자신들은 죽고 만 게야. 어떠냐, 재미있지?”

재밌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죽은 개들이 불쌍하기도 한 나는 복잡한 마음이 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정희야. 너는 아직 어리다만 꼭 알아둬야 한다. 이 세상에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야기 속 개들처럼 받은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란다. 네가 어느 쪽의 사람이 돼야 하는지는 할애비가 일러주지 않아도 잘 알 게야.”

긴 얘기를 마치신 할아버지는 목이 컬컬해지신 듯 입을 다무셨다. 막걸리라도 있으면 한 잔 들이키셨을 테지만 장은 이미 파한 후였고 그곳은 돌아가는 길 위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그 교훈을 되새겨봤다. 어린 마음에도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았다. 지금까지도 나는 다른 이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받은 은혜를 갚을 줄 알아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그 가르침을 마음 깊은 곳에 새기고 실천에 옮기며 살아 왔다 자부한다.

그건 그렇고 구수한 옛날얘기를 많이 해 주셨던 할아버지도 그날 장에서 만났던 여인에 대해서는 이후 다시는 말씀이 없으셨다. 그저 얘기해 줄 만한 사연이랄 게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어린 내가 이해 못할 거라 여기셨던 것일까? 그도 아니면 손주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연이었던 것일까? 이제 여쭤 볼 수조차 없으니 아쉽고 아련할 뿐이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어서 그날 장에서 있던 일을 외할머니에게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이만하면 나도 할아버지의 은혜를 조금은 갚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annje37@nspna.com, 안정은 기자(NSP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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