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NSP통신 박정섭 기자) = 몇 년 전 한 국내 대기업은 해외 유력 일간지에 이색적인 내용의 문구가 실린 광고를 게재한 바 있다.

당시 이 광고는 필자의 눈을 번뜩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너무도 강렬했던 ‘from A to Z’이라는 카피 문구 때문이다. 이 문구는 아직도 기억속에 생생하다.

해당 대기업은 이 광고를 통해 ‘우리는 뭐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라는 것을 널리 알리고자 이같은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금은 이 문구가 들어간 광고를 찾아 볼 수 없다. 다른 광고 카피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어발식 확장을 일삼다가 IMF위기를 맞이한 바 있는 한국의 재벌기업(대기업)들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자신의 갈 길을 못찾은 채 헤매고 있다. 이같은 모습은 이들 기업들이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혹독한 시련의 시기를 맞고 있는 듯해 보인다.

필자가 언론인 생활을 올해로 25년째 하면서 숱한 기업들을 접해 왔지만, 지금처럼 기업들이 어려워 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STX그룹이 무리하게 확장을 일삼다가 지금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채권단들과 회생절차를 논의하고 있고 자금확보에 열을 올리는 등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그야말로 처절하다. STX의 강덕수 회장은 다 아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M&A를 너무 과도하게 시도했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현대그룹도 현대상선을 중심으로 자구안을 추진중이다. 해운회사인 현대상선은 지난해까지 무려 4년연속 적자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관리종목에 편입될 수 있는 그야말로 심각한 상황이다. 증권사 지분을 매각하기로 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왜 해운회사가 증권회사의 지분을 갖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한진그룹도 한진해운을 중심으로 어려운 상황이다.한진해운은 우리나라 1위의 해운회사이다. 계열사인 대한항공이 계속 자금을 대고 있지만 상황이 그리 녹녹해 보이지는 않는다. 한진해운 역시 4년째 적자다. 3만8000원대까지 치솟던 이 회사의 주가는 현재 7000원대에서 맴돌고 있다. 자그마치 5분의 4토막이다.

대한항공이 이미 수천억 원을 한진해운에 쏟아 부었지만,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회생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동부그룹도 자구안을 발표했다. 동부하이텍 등 일부 계열사를 매각하고 동부제철의 인천공장도 매각하겠다고 한다.

직원이 자살까지 하고 투자자들이 분신자살을 시도하는등 말 많은 동양그룹은 이미 현재현 회장이 구속된 상태다. 사기성 어음을 발행했다는 혐의다.

‘자수성가 신화’로 한때 유명세를 탔던 윤석금 회장의 웅진그룹도 파산했다.

건설회사는 두 말 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 최대 대기업인 삼성그룹도 이같은 어려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삼성엔지니어링이 지난해 무려 1조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그야말로 사상최악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건설사가 이러 할진데 중소 건설사는 어떠하겠는가?

우스개 소리일지는 모르지만 IMF 위기를 맞이해 한차례 큰 홍역을 치뤘던 기업들이 요즈음 비교적 조용한 걸 보면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는 속담이 맞아 떨어지는거 같다.

자신이 잘하는 한가지 분야에 집중하는 것, 이게 바로 기술력이 아니겠는가?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보겠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갖고 무리한 확장을 일삼는 것. 이는 불보듯 뻔한 결과를 초래할 뿐 아니겠는가?

한국에는 어느 분야이든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예를 들어 증권사만 60여 개가 넘는다. 이래가지고 유수한 세계적인 증권사들과 경쟁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책을 팔다가 건설회사를 인수하질 않나, 대기업이 떡볶이장사를 하지 않나, 배 만드는 회사가 증권사를 차리지 않나, 이러다 다시 ‘from A to Z’이라는 광고 문구를 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필자가 최근 한 외국업체의 CEO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심금을 울려주는 말을 들었다.

그는 내게 물었다.

“왜? 한국기업들은 그렇게 최대만을 좋아하느냐?”

나는 이 질문을 받고 한동안 입이 얼어붙었다. 우리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꼬집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말문을 열지 못하자 그는 바꿔 얘기했다.

“난 ‘최대’가 아니라 ‘최고’를 좋아한다”라고.

우리 기업들도 푸른 말띠 해인 갑오년 새해를 맞아 이제 ‘최대’가 아닌 ‘최고’를 생각해보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본지 편집부국장 겸 산업부장)

desk@nspna.com, 박정섭 기자(NSP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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