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NSP통신] 도남선 기자 = 인터넷의 성장은 아고라의 부활을 선언하는 듯 했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에서처럼 모든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마음껏 개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의 규모가 커져 채택한 간접 민주주의를 보완하고 시민 각각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며 다들 놀라워 했다. 특히 게시물에 간단한 댓글을 덧붙일 수 있게 되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쉽게 발언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그 댓글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했다. 국정원 댓글 공작 사태로 인해 말이다.

사실 댓글로 인해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주장하기에 댓글은 너무 ‘찌질’해 보인다. 시민 각각에게 있어 댓글이 주는 이미지는 그리 거창하지 않다. 뉴스에 달리는 베스트 댓글은 비꼬기나 농담 따먹기인 경우가 많고, 게시물이 등록되자마자 ‘1등’이라며 등수 놀이를 하는 댓글도 있다.

자못 초현실적이기까지 한 ‘댓글 영향론’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에다 전략적인 활동이 뒷받침돼야 할텐데 드러난 결과물이 스펙터클하지도 않았다. ‘오늘의 유머(오유)’ 등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작성한 것으로 드러난 댓글은 67개.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겠는가” 라는 여당의 반박은 반대 측의 의혹과 분노를 무(無)로 돌리고 말았다.

그러나 숫자 프레임을 벗겨 보면 다른 것이 보인다. 이승만 대통령의 부정선거 때처럼 투표함을 바꿔치기하는 지극히 비민주적인 방식은 오늘날의 감시 시스템을 피해 가지 못한다. 반면 인터넷 공간에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손 안 대고 코 풀기만큼 쉽고 안전하다.

누리꾼들은 댓글의 작성자가 어떤 사람인지보다도 그 사람의 의견이 무엇인지에만 알 수 있다. 애써 숨지 않아도 정체를 숨겨 주는 인터넷 공간에 어떤 의도를 갖고 남긴 댓글은 그 수가 몇 개이든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진다. 그러니 ‘인터넷은 민주주의적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활용해 비민주적 행위를 민주적 활동의 결과물로 포장한 국정원의 행위는 상당히 지능적이다.

현 대통령 당선에 대해 “댓글 때문에 됐다”기 보다는 “될 사람이 됐는데 그 와중에 댓글 사건이 있었다” 정도로 사태의 심각성은 희석되고 말았다. 그러나 ‘댓글 숫자’의 프레임에 갇힌 시민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다. 국민의 주권을 보장하는 듯 하면서 그 개별 주권을 정치권의 뜻대로 조작하는 국가 기관이 버젓이 활동한다면 그 나라를 민주국가라 할 수 없다.

수단과 결과가 적법하다 한들 의도가 바람직하지 않다면 그 행위는 마땅히 지탄받아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이 강조되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과정 상의 문제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감시하고 처벌해야 옳다.


홍준헌 NSP통신 칼럼니스트는 경북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취업신문 대구팀장을 거쳐 월간지 WANNA의 편집장으로 재직중인 20대 청춘의 대표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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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남선 NSP통신 기자, aegookja@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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