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강수인 기자)

(서울=NSP통신) 강수인 기자 = 은행권이 고령 고객층을 위해 창구 문을 활짝 열고 지점장실도 창구 옆으로 배치했다. 어르신들이 발을 딛기 편하도록 발받침까지 수입해 제작했다. 이와 함께 오디오북, 장기, 대형 스크린까지 동원해 고령 고객을 위한 ‘보다 나은 서비스’ 제공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영업점 축소로 인한 고령 고객의 불편함을 덜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실제 고령 고객들 사이에서는 “(특화 점포의) 이용이 편해 더 확대됐으면 한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나온다.

◆‘내 손안의 금융’ 시대, 은행권 점포 통·폐합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점포 수 감소폭은 2018년 23개, 2019년 57개, 2020년 304개, 2021년 311개로 커지고 있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적 책임 등을 이유로 점포 폐쇄 자제령은 내리자 감소세가 잠시 주춤했지만 최근 시중은행에서 다시 영업점 통·폐합에 나서고 있다. 실제 오는 7월 33개의 영업점이 사라질 예정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산업이 디지털화, 비대면화되면서 점포 수를 줄이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비용절감을 위해서 점포를 줄이고 인근 점포와 통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모바일뱅킹, 인터넷뱅킹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년층의 불편이 도마에 올랐다. 통계청의 ‘KOSTAT 통계플러스’ 봄호에 실린 ‘노년층의 금융거래 불편함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보고서에 따르면 지점을 방문해 대면 거래만 하는 노년층은 70%로 청장년층 16%보다 4배 이상 많았다. 방문거래만 하는 65~69세 노년층은 57%, 70~74세 노년층은 71%, 75~79세 노년층은 80%, 80세 이상 노년층은 89%다.

금융당국 또한 ‘은행 점포 폐쇄 내실화 방안’을 통해 은행권의 점포 폐쇄 방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은행권은 피할 수 없는 ‘디지털 금융으로의 흐름’과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 사이에서 나름대로의 협의점을 찾아냈다. 고령 고객들만을 위한 점포를 만든 것이다. 실제 기자가 은행들의 고령층 특화 점포에 방문해보니 고령 고객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연구한 흔적이 눈에 띄었다.

12일 서울특별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 방문한 KB시니어라운지의 문이 열렸다. (사진 = 강수인 기자)

◆“오늘은 은행 오는 날”…KB국민은행 ‘이동식 점포’

KB국민은행은 별도의 특화점포를 마련하기 보다 차량의 구조를 변경해 복지관으로 직접 찾아가는 ‘KB시니어라운지’를 운영하고 있다. 대형 벤 내부를 1인용 은행 창구로 만든 이동식 점포다. 정해진 요일에 서울 노원구, 중랑구, 은평구 등 노인복지기관으로 방문한다.

이 차량에는 직원 3명이 탑승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얼굴이 익숙한 사람으로부터 친밀감을 느끼고 보다 편하게 대해주신다는 판단에 고정인원으로 본점 직원, 영업점 직원, 청원경찰을 배치했다. 운영하는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15시까지다.

특히 KB국민은행은 이 차량에 어르신들이 올라타기 어려우실 수 있다는 생각에 딛고 오를 수 있는 발 받침대를 따로 설치했다. 차량에 맞는 사이즈를 찾기 위해 해외에서 수입해 온 것이다. 오른쪽엔 손잡이를 설치하고 직원이 함께 부축해 차량으로 안전하게 오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KB시니어라운지에서는 통장정리, 입출금, 예·적금 가입, 연금수령 등 간단한 거래가 가능하다. 하루 평균 20~30명이 방문하며 실제 거래는 20~30건이 이뤄진다.

KB시니어라운지 직원은 “어르신들이 복지기관에서 금융사기 예방교육과 디지털 금융 교육이 끝나면 점포에 방문해 보충수업처럼 직원들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기도 하신다”며 “청년 고객들은 대부분 직접 정보를 찾고 이를 확인하는 개념으로 창구를 방문하는 반면 어르신들은 다르기 때문에 어르신들만을 위한 점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반 점포에서 어르신들이 1~2시간씩 기다려 금융업무를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이렇게 어르신 전용 이동식 점포가 있어 쉽고 빠르게 이용하실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며 “지방으로 확대 운영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신한은행 신림동 지점 창구모습과 바닥의 색깔유도선. (사진 = 강수인 기자)

◆신한은행, 활짝 열리는 창구…‘즉시 출동’ 영업점

신한은행의 신림동 지점은 지점장실이 창구 옆에 있다. 언제든 문제가 발생하면 지점장이 즉시 달려 나온다. 창구마다 바로 열리는 문도 설치돼 있다. 디지털 기기, ATM 사용을 어려워 하시거나 창구를 잘못 찾아오는 등 불편사항이 발생하면 직원이 바로 밖으로 나가 직접 안내한다. 스마트 키오스크도 창구 사이에 위치해 고객이 이용을 어려워하면 옆에서 직원이 바로 도울 수 있는 구조다.

이 지점에는 창구마다 커다란 TV가 붙어 있다. 어르신들이 큰 화면에서 큰 글씨로 계약서나 안내서 등을 볼 수 있도록 마련한 ‘대형 안내장’이다. 지점 바닥에는 고속도로의 ‘색깔 유도선’처럼 단순업무, 예·적금, 대출·외환 등 색깔별로 화살표가 이어져 있다. “통장정리는 초록색 선을 따라가시면 됩니다”라는 말처럼 쉽게 안내해 드리기 위함이다.

신림동 지점은 위치 특성상 고객의 연령층이 사회초년생, 고령자로 극단적으로 나눠져 있어 청년층에 대한 배려도 함께 담았다. 고령 고객들은 창구에서 거래가 이뤄지는 시간이 긴 경향이 있어 별도의 화상상담 창구를 마련해뒀다. 고객이 직접 신분증 스캔과 문서 스캔까지 가능하도록 구성돼 있다. 영상통화를 하듯 금융거래가 이뤄져 별다른 이질감이나 속도의 차이도 느껴지지 않았다.

신한은행 신림동 지점장은 “처음에는 지점 창구들이 한 눈에 보이는 곡선형 인테리어와 알록달록한 바닥에 고객님들이 낯설어하셨지만 지금은 상당히 편하게 느끼신다”며 “전세대출 상담을 위해 방문하는 사회초년생 고객과 일상 금융거래, 보이스피싱 관련 문의를 위해 방문하는 어르신들을 모두 배려한 ‘고객 중심형 점포’라고 말할 수 있다”고 자부심을 나타냈다.

◆은행, ‘장기 두고 수다 떠는’ 마을회관 역할도

우리은행 화곡동 시니어플러스 영업점은 ‘효심’ 영업점으로 고령화 특화 점포 3호점이다. 이 곳 한켠에 위치한 ‘사랑재’는 기왓장으로 인테리어를 해 한옥 대청마루같은 느낌을 낸다. 한켠에는 장기를 둘 수 있도록 마련했다. 이곳에선 어르신들 여러 명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강서구 주민인 65세 A씨는 “이곳(영업점)은 화곡중앙시장 옆에 있어서 시장에 왔다가 장을 보고 동네 사람들을 만나 쉬어가기 편해서 자주 온다”며 “꼭 은행업무가 있지 않더라도 오기 좋다”고 말했다.

함꼐 대화를 나누던 강서구 주민 67세 B씨는 “지금은 작게 (영업점을) 만든 것 같다”며 “사이즈가 더 커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쉬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의 시니어 특화점포인 경기 고양시 탄현동 소재 탄현역출장소도 어르신들이 붐볐다. 지점 곳곳에 어르신들이 읽기 좋은 책들이 마련돼 있고 한쪽 벽에는 오디오북으로 책 내용을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를 마련했다. 창구에는 ‘말’이 ‘큰 글씨’로 보이는 태블릿이 설치돼 있고

하나은행 탄현역출장소를 방문한 65세 C씨는 “아파트 사이에 위치해 방문하기가 편하다”며 “직원들이 특히 친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지방으로 확대 필요, 금융교육 병행해야

이처럼 은행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르신들에게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특히 어르신 특화 점포가 수도권 위주로 운영이 된다는 점이다. 실제 우리은행의 ‘시니어플러스 영업점’ 3곳은 모두 서울에, 신한은행의 ‘고객 중심 점포’ 6곳도 서울에 있다. KB시니어라운지도 서울과 인천에서 운영이 되고 있고 하나은행은 경기권에 있다.

이 문제는 은행권 실무자들도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을 형성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협조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처음 고령층 특화점포 운영을 기획할 당시 지역사회의 협조를 받기가 어려웠다”며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위험한 상품 가입 권유는 없을 것이라 설명을 드려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으셨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복지기관이나 병원과 협력해 특화점포를 만들려고 해도 지역별, 기관별 기준이 다르고 주차부치나 공간 확보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지방으로 확대를 의논하고는 있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NSP통신 강수인 기자(sink606@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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