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NSP통신) 강수인 기자 = 금융권에서 “금리의 시대는 갔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예·적금 상품을 바라보는 금융소비자들의 눈이 ‘목돈 마련’에서 이른바 ‘갓생(God·生, 모범적이고 부지런한 삶을 뜻하는 신조어)을 위한 수단’으로 바뀌었다는 의미다.
◆ 은행권, 아이디어 상품으로 세대 초월 인기
은행권에서는 마치 습관 만들기 앱(App)에서 제공할듯한 수신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성취감을 자극해 도전하도록 만들거나 연예인 팬심을 활용해 힘을 합쳐 돈을 모으는 형식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4월부터 ‘한달부터적금’을 운영 중이다. 총 납입회차의 80~90% 이상 달성시 적용되는 우대금리를 포함하면 연 4.5%의 금리를 제공한다. 이 적금상품이 매달 1만여좌가 신규 가입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계획세우기’ 방식 때문이다.
해당 상품 가입 과정에는 “미래의 내가 뿌듯할 거예요”라는 문구와 함께 나타나는 ‘목돈 목적’ 카테고리에서 ‘내 계획 만들기’로 납입금액과 기간 등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는 페이지가 열린다. 가입 후에는 이체 날짜에 금액이 입금되면 ‘인증 도장’이 찍힌다. 이를 활용해 전략적으로 다양한 목표를 설정, 목돈을 만들고 굴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케이뱅크는 ‘챌린지 박스’를 운영 중이다. ‘챌린지(Challenge)’는 도전을 가리키는 단어이지만 최근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에서 재미난 행위에 참가하도록 초대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챌린지 박스’ 역시 목돈을 모을 계획을 세워 스스로 성취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배달음식 줄여 뱃살 줄이기 30일간 30만원’, ‘자취방 5평 늘리기 200일간 500만원’ 같은 다양한 세대의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목표를 예시로 제공한다.
토스뱅크에서도 ‘상금 미라클모닝 도전통장’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면 상금을 주는 상품이다. 미라클모닝은 오전 6시 혹은 더 이른 시간에 일어나 독서, 운동 등 자기계발을 하는 활동으로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싶은 MZ세대의 마음이 담긴 트렌드다.
이 상품은 비단 MZ세대뿐 아니라 이른 아침 출근하는 40대, 50대에게도 사랑을 받고 있다. 실제 도전통장의 고객층은 ▲20대 5% ▲30대 11% ▲40대 31% ▲50대 28% 등으로 골고루 분포돼있다.
카카오뱅크는 다양한 순간의 기록을 담을 수 있는 ‘기록통장’을 출시했다. 그중 연예인 소속사와 제휴한 상품에 대해 고객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SM엔터테인먼트와 손을 잡고 아이돌 그룹 NCT WISH 제휴 통장을 선보였는데 저축 규칙을 NCT WISH 멤버들이 직접 설정했고 NCT WISH의 사진으로 기록통장을 꾸밀 수 있으며 한정판 템플릿으로 SNS에 공유할 수 있다. 저축할 때 멤버들이 남긴 음성 메시지와 직접 그린 이모지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고객들은 기록통장 내 ‘팬 화력 보기’ 서비스를 통해 기부금 목표 달성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납입할 때 남긴 메모는 NCT WISH멤버들도 볼 수 있어 일종의 소통창구 역할도 했다. 이로 인해 기록통장 일평균 가입자수는 한달만에 6배 상승했고 그중 10%는 카카오뱅크 신규고객이기도 했다. 20대 이하 유입고객은 80%에 달했다.
◆ 적금, 체감이자율 낮아…복잡한 우대금리 조건도 매력 떨어져
이처럼 아이디어 수신상품에 대한 반응이 뜨거운 이유는 재미뿐 아니라 적금의 체감 금리가 낮거나 고금리 상품의 경우 ‘미끼 상품’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고금리를 내건 적금 상품을 살펴보면 납입 기한이 짧거나 한도가 적은 경우가 많다. 적금 이자는 통상 ‘회차별 입금금액 × 약정금리 × (예치일수/365)’로 계산된다. 예를 들어 1월에 1년 만기 적금에 가입하면 1월은 12개월간의 이자를 받지만 2월은 11개월, 3월은 10개월, 12월은 1개월의 이자를 받게 된다. 연 6%의 적금에 월 100만원씩 1년만기로 가입해도 첫달에만 연 6%가 적용되고 뒤로 갈수록 이자는 줄어들어 만기시 실제 이자는 3% 남짓이다.
최근엔 고금리를 내걸었지만 만기가 짧고 이자소득세까지 제하면 실제 받는 이자가 대폭 줄어드는 경우도 많았다. iM뱅크(구 대구은행)의 경우 최고 연 20%의 금리를 지급하는 ‘고객에게 진심이지 적금’을 출시했지만 이는 60일 만기 자유적립식 정기적금으로 기한도 짧고 매일 입금해야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는 구조이고 매일 5만원씩 입금해도 받을 수 있는 이자는 4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신한은행이 내건 ‘연 8%’ 금리를 제공하는 ‘청년 처음적금’은 우대금리 조건이 복잡하다. 기본금리는 연 3.5%이고 우대금리를 받으려면 급여이체 또는 급여클럽 월급봉투 6개월 이상 수령, 신한 슈퍼SOL 앱 회원가입, 직전 1년간 신한은행 상품 가입이 없는 ‘첫 거래’, 신한 청년희망적금 만기고객 등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 은행권, “‘금리’ 시대 저물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은행권은 ‘고금리’의 미끼에 금융소비자들이 매력을 느끼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한 인터넷전문은행 관계자는 “요즘은 은행들의 수신상품 금리가 내려가는 추세인데다 적금 자체가 납입기간별로 금리가 매겨진다는 것을 금융소비자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금리 수치만 보고 금융소비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며 “적금이 목돈마련의 개념 보다는 하루의 루틴처럼 자리가 잡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실제 40대 고객들 중 도전통장같은 상품에 가입하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출근을 위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데 이것만으로도 ‘짠테크’를 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는 반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하루의 일과가 하나의 게시물로 작성돼 SNS로 공유되는 시대에 적금으로 꾸준히 돈을 모은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자랑거리이자 성취감을 제공하는 부분”이라며 “최근에는 가상자산이나 주식 등 ‘일확천금’을 누리는 분들도 많지만 여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꾸준히 돈을 모으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적금을 선택하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NSP통신 강수인 기자(sink606@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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