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NSP통신) 최정화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서든데스(돌연사) 돌파 전략으로 ‘형제경영’ 카드를 꺼내 든 모양새다. 이번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사실상 패소한 최 회장이 SK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한 대응안으로 가족경영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이달말 열리는 확대경영회의 핵심안건인 리밸런싱(재조정) 방향성까지 결정되면 향후 SK그룹 경영 방침이 가닥을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1960년생)은 친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SK·SK이노베이션·SK E&S·1963년생)과 사촌동생 최창원 부회장(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겸 SK디스커버리 대표·1964년생)을 좌청룡 우백호로 두고 각각 에너지사업과 그룹경영 등 중책을 맡기며 형제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7일 발표된 최 수석부회장의 원포인트 비정기 인사를 통해서도 최 회장의 형제경영 의지는 드러난다. SK그룹은 회장 다음으로 수석부회장과 부회장, 사장, 부사장 순으로 직급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 리밸런싱·SK家 전통·상의 회장 연임·이혼항소심 여파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최 수석부회장 SK이노베이션 선임을 놓고 ‘형제경영 강화’ 등 여러 분석안을 내놓고 있다.
우선 최 수석부회장에 주력 사업인 에너지 사업 전권을 부여해 그룹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도로 보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SK 측도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 미래 사업 전반을 챙기기 위한 것"이라고 선임 배경을 밝혔다. 이혼항소심 후 열린 지난 4일 임시 수펙스추구협의회에 참석한 최 회장 역시 “에너지 사업의 질적 성장을 추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차전지를 비롯한 에너지 사업을 중심축으로 가져가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특히 최 수석부회장이 그간 맡고 있던 SK그룹 수석부회장과 SK E&S 수석부회장 자리도 계속 유지하게 된 만큼 그룹 내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풀이된다.
SK이노베이션은 최 수석부회장이 이끌던 SK온의 모회사로 SK그룹 내 에너지 분야를 총괄하는 중간지주회사다. SK에너지, SK지오센트릭, SK온, SK엔무브, SK인천석유화학,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아이이테크놀로지, SK어스온, SK엔텀 등 9개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SK그룹이 리밸런싱 작업에 착수한 가운데 최 수석부회장이 그룹 내 뿌리이자 핵심 사업인 에너지·그린 사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아 사업 전반을 재편하고 미래 생존 전략을 위한 내실 있는 중장기 새판을 구축할 것이란 시선도 있다.
최 수석부회장 인사가 리밸런싱 연장선이며, 위기 상황에서 리밸런싱을 좀 더 속도감 있고 총괄적으로 하겠다는 취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SK온은 2차전지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를 지속하고 있어 자금 압박을 심하게 받고 있는데 SK이노베이션이 자금을 충당하고 있다”며 “자금 확보 차원에서 SKIET 등 SK이노 계열사 매각 등도 진행해야 상황이라 오너가 SK이노 전체를 총괄하면서 sk온에 대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는 그림으로 가다 보니 최 수석부회장이 SK이노를 이끌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이번 리밸런싱을 통해 SK온과 SK엔무브가 합병 후 상장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SKIET과 SK실트론 등도 매각 대상에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박 대표는 “결론적으로 최 수석부회장에 힘을 실어준 것이고 실질적으로 2차전지에 대한 자금 지원이나 속도감 있는 투자를 위해 에너지 전반을 총괄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덧붙였다.
최 수석부회장 인사와 지배구조를 연관시키는 추측에 대해서는 관련성이 크지 않다고 봤다. 박 대표는 “최 수석부회장이 최근 SK지분을 일부 정리했기 때문에 이번 이노 인사와 지배구조와는 무관하며 오히려 최신원 전 회장 일가와 연관이 있다”고 짚었다.
최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연임하게 되면서 앞으로 3년 더 SK그룹과 대한상의를 동시에 맡게 되자 형제들의 지원이 필요해진 이유도 꼽힌다.
또 SK그룹은 선대 회장 때부터 형제경영을 해왔다. 특히 SK家는 형제의 난 없이 사촌경영을 이어오며 우애가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 뒤를 동생 최종현 회장이 이었고, 최종건 회장 장남인 고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과 차남인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은 최 회장에게 경영권을 양보했다. 최 회장도 선대 회장 일가에 SK 지분 일부를 증여했고 삼남인 최 부회장에게 그룹 내 요직인 수펙스 의장 자리를 맡길 정도로 사촌간 믿음이 각별한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최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수펙스 의장으로 선임됐다.
이혼항소심 결과도 형제경영을 가속하는 데 계기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1조3800억원대 재산 분할 판결로 인해 최 회장의 지배력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최 회장이 형제 경영을 통해 경영 쇄신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SK그룹의 사활이 걸린 확대경영회의는 이달말 열릴 예정이다. 확대경영회의의 정확한 일정은 아직 외부 비공개로 진행하고 있다. 수펙스 관계자는 “이번 확대경영회의에서 리밸런싱이 하나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NSP통신 최정화 기자(choijh@nspna.com)
ⓒ한국의 경제뉴스통신사 NSP통신·NSP TV. 무단전재-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