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NSP통신) 박광신 기자 = 석가모니 부처님 이후 78대 전법 제자인 한국불교의 거목 송담(松潭)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한국불교의 선맥(禪脈) 잇고 있는 선방 수행 40년의 강설(江雪) 스님이 오지 중의 오지 경남 거창에서 선농불교(禪農佛敎)의 깃발을 들고 한국불교 개혁을 위한 첫 삽을 떴다.
특히 강설 스님은 법랍(法臘:출가하여 수계한 이후의 나이) 40년이 넘는 중진 스님으로서 선방 공부에만 매진한 수행승으로 선원수좌회에서 활동하면서 조계종 총무원의 잘못된 행정에 대해 맞서 지적하는 등 불교개혁에 앞장서 왔다.
특히 은처승 논란이 끊이지 않는 수원 용주사 주지 임명의 문제 등 이미 돌아가신 자승스님의 전횡으로 조계종이 문제를 일으키자 한국불교의 대표적 선승이자 강설 스님의 은사이신 송담 스님은 탈종(脫宗)해 재단법인 법보선원을 세웠으며 현재는 법보선원의 소속 승려로 소속돼 있다.
이에 NSP통신은 오지 중의 오지인 경남 거창군 가북면의 석가천(釋迦川)를 끼고 있는 선농불교의 현장에서 강설 스님과의 단독 인터뷰를 진행하고 심각하게 세속화된 한국불교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스님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강설 스님이 거처인 오지 중의 오지인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에 대한 소개와 함께 선농불교 설명은
A,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일대는 오지 중의 오지다. 수년 전 2차선 도로가 나기 전까지 가북면 용암리 일대는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었다. 물론 2차선 도로는 연결된 곳이 없이 용암리에서 머문다.
이곳은 개금(開金)골이라고 불린다. 옛적 이곳에서 금불상이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인가 가뭄 타지 않고 흐르는 계곡 개천의 이름이 석가천(釋迦川)이다.
나는 이곳 해발 800m에서 수만 평의 임야 농지와 씨름을 하고 있다. 30여 년 전 개금골과 인연을 맺고 틈틈이 땅을 사들여 이제 약 5만여 평에 이른다. 홀로 트랙터와 포크레인으로 돌투성이 불모지를 개간해 7000여 평의 밭이 만들어 졌다.
중들은 시주받지 않고 스스로 농사지어 먹으며 참선해야 한다.
선농불교란 말 그대로 농사지으며 참선하는 것이다. 신도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즉 시주를 받지 않고 중들이 스스로 농사지어 자급자족하면서 공부하자는 거다.
부처님 시대에는 탁발(托鉢)을 하면서 공부했다. 신도가 늘어나면서는 시주를 받아서 중들이 먹고 살았다. 지금의 한국불교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니 나태해지고, 풍요가 쌓이다 보니 온갖 나쁜 일들이 생겼다.
이미 당나라 시대 백장회해(百丈懷海) 선사께서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하라고 가르치셨다. 즉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뜻이다.
이제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변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제가 공부를 해 보니 하루 종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것보다 일정 정도의 노동을 수반하는 것이 정신이나 육체의 건강에도 도움이 될뿐더러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Q, 그러면 우리나라에도 강설 스님 이전에 선농불교를 주장하신 분이 계셨는지
A, 그렇다. 우리가 잘 아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신 백용성(白龍城) 스님께서 이미 일제강점기에 함양에 화과원(華果院)이라는 농장을 지어 선농불교 운동을 펼치셨고 농장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해외 독립운동자금으로 보내기도 했다.
스님은 일제가 대처승(帶妻僧, 결혼한 승려)제도를 시행하자 여기에 반기를 들고 대각사(大覺寺)를 중심으로 왜색불교 추방운동을 하셨던 큰스님이다.
이때 이미 중들이 스스로 농사지어 먹으며 공부해야 대각을 성취할 수 있다고 선농불교 운동을 했던 것이다. 용성스님의 선농불교 맥이 이어지지 못한 것이 매우 안타깝다.
만해 스님이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우리나라 불교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셨고 용성스님이 그 모습을 보여주셨는데도 말이다. 이제라도 선농불교가 한국불교의 새로운 개혁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Q, 이곳에 와 보니 지세가 좋고 물이 많은 것 같다. 이 터를 어떻게 만드셨는지
A, 30여 년 전에 제가 어머님을 모시면서 수행을 했다. 수행하던 해인사로부터 멀지 않아 한 철 참선 공부 끝나고 해제가 되면 이곳에 와서 어머님을 봉양했다.
그러다가 3개월이 지나고 입제철이 되면 다시 들어가고 하다 보니 인연이 맺어져 이곳에 선농불교의 첫 도량이 된 것 같다.
그리고 한 평 두 평 사다 보니 내가 욕심이 많은지 약 5만여 평이 된 것 같은데 땅이라도 있어야 선농불교를 하지 아무것도 없이 시작할 수는 없어 그래서 어렵게 만든 거다.
이 정도는 돼야 약 50명 정도의 스님들이 모여 농사지으면서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터가 제법이다. 해발 800m 어름이 장수라인이라고 하는데 자연환경이 그만이다.
특히 좌우로는 물이 일 년 내내 가물지 않고 해발 900m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산소가 아주 풍부한 약수다. 저 위 산신각을 지어놓은 곳이 당산(堂山)골 밑인데 옛날 당산골은 산제(山祭)나 대동굿을 지내던 곳으로 개금의 중심이다.
Q, 아까 올라오다 보니 스님께서 혼자 밭에서 말뚝을 박고 계시던데 이 너른 밭을 어떻게 혼자 농사지으시는지 현재 이곳에는 혼자 계시는지 아니면 몇 분이나 함께 하시는지
A, 농사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너무 욕심을 내면 안 된다. 공부한다고 좌선을 하루 10시간 12시간 앉아 있으면 몸이 망가진다. 육신이 망가지면 수행도 공부도 못하게 된다. 농사도 마찬가지다.
욕심부리면 몸과 정신이 나빠진다. 쉬엄 쉬엄 하는 거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공부하고 또 해뜨기 전에 밭일 하다가 힘들면 쉬고 하면서 선농 공부를 하는 거다. 그렇게 하면 농사도 되고 공부도 된다. 또 제가 혼자 하다 보니 여기저기 농사 도와주는 분들이 계시고 어찌어찌 대중은 끊이지 않고 있다.
Q, 불교에서는 문중이라고 하나요? 강설스님의 문중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A, 저는 인천 주안에 있는 용화사(龍華寺)를 통해 출가했다. 은사 스님은 송담(松潭) 큰스님이시고 문중(門中)을 보자면 구한말의 큰 스승이셨던 경허(鏡虛)스님, 상좌이신 만공(滿空)스님을 이어 전강(田岡) 스님이시고 전강 스님의 제자가 바로 송담 스님이다. 불교의 가장 큰 스승은 석가모니 부처님이시고 석가모니 부처님 이후 78대 전법 제자가 송담 스님으로 불교의 선맥(禪脈)을 잇고 있다.
Q, 스님께서는 이곳 선농불교의 터전을 어떻게 만드실 생각이신지 앞으로의 계획은
A, 수행과 농사가 함께하는 도량이다. 저 위 사놓은 땅 중에 아주 좋은 터가 있다. 한 2000여 평 지세와 향(向)이 딱 맞는 곳이 있어 그곳에 스님들 수행처를 만들 거다. 그리고 둘러보셨지만 10개 넘는 밭들을 제가 돌 골라내고 개간한 거다.
그곳에 약초를 중심으로 재배하려고 한다. 그리고 아래쪽으로는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즉 남녀 불자님들이 수행하면서 힐링도 하는 곳으로 만들까 한다. 저쪽 아래 올라오다가 본 학교부지는 폐교한 개금 분교였는데 제가 매입했다. 여기에는 아픈 분들에게 도움에 될 약초 카페를 구상하고 있다.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은 이제 세워가는 중이다. 쉬엄쉬엄 할 계획이다.
Q, 스님께서도 불교개혁을 말씀하셨는데 한국불교가 나아가야 할 길은
A, 제가 선농불교를 주장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율법적으로도 그렇고 수행의 방법으로도 그렇다. 중들은 출가하고 머리 깎은 이유를 잊으면 안 된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대처승들이 사판승(事判僧)이 되어 절의 행정을 장악하고 수행하는 비구들, 즉 이판승(理判僧)들을 함부로 막 대했다. 그래서 불교 정화가 일어났다. 그랬더니 요즘은 또 절의 삼직(三職)을 맡은 중들이 새로운 사판승들이 돼 공부하는 스님들을 힘들게 한다.
공부하기가 너무 힘이 든다. 불교의 많은 문제와 폐해가 드러나도 한국불교를 지탱하는 것은 공부하는 수좌들이 있기 때문이다.
40여 년간 선방 공부를 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부분이다. 그래서 공부하는 스님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당처(當處)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중들 스스로 자정하고 수행의 본분을 찾아가야 한다. 개금에서 시작되는 선농불교 공동체는 100여 년 전 이미 선농불교 운동을 펼치셨던 용성스님과 같이 수행공동체로 선농불교 운동의 마중물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선방의 수행을 통해 불확실성의 사회를 만든 원인을 찾다 보면 어김없이 종교의 역할 부재가 이유의 하나로 드러난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 부족할 것이 없는 시대, 그럼에도 우리는 왜 아픈 곳이 많을까? 왜 의지할 곳이 없을까? 가지고도 더 갖고 싶은 탐욕이 꺼지지 않는 정글 같은 사회의 용광로 같은 욕망의 불길은 언제나 사그러들까? 하루가 멀다 않고 뉴스의 지면을 장식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엇나간 행동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의지할 곳을 박탈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계율의 파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스님들이 유튜브를 하고 방송에 나와 음식을 만들어 돈 버는 모습을 당연하게 바라보는 천박해진 정신문화가 중국에서 날아오는 5월의 미세먼지보다 더 무섭게 우리를 뒤덮고 있는 시대다.
경남 거창의 숲속으로부터 작지만 청량한 울림을 시작하고 한국불교에 선농불교를 통해 새로운 불교문화를 만들고 싶다.
NSP통신 박광신 기자(only-ks1@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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