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NSP통신] 도남선 기자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카가와 신지가 팀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시즌이라는 심경을 밝혔다(스포탈코리아)”
‘개인적으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는 요즘 우리가 자주 쓰는 표현이다. 방송에 출연하는 일부 출연자들은 이 표현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다. 또한 그 표현은 시청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이제는 사회 전체에서 널리 쓰는 표현으로 굳어가고 있다.
우선 ‘개인적으로’를 살펴보자. ‘개인적으로’의 구조는 명사 ‘개인’에 접사인 ‘적’이 붙어 ‘개인적’이 된 뒤에 다시 조사 ‘으로’가 붙은 형태이다. 적(的)은 명사로 쓸 때는 ‘어떤 일의 목적이 되는 대상’이라는 뜻을 지니지만 여기서 적(的)은 ‘그 성격을 띠는’, ‘그에 관계된’, ‘그 상태로 된’의 뜻을 가진 접미사로 쓰였다.
이에 따라 극적(劇的)은 ‘극의 특성을 띤. 또는 그런 것이나 극을 보는 것처럼 큰 긴장이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또는 그런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두고 카리스마적 (charisma的)이라고 할 때는 다른 이를 따르게 하는 뛰어난 능력이나 자질이 있는 사람을 가리킬 때이다.
“조세피난처와 선 긋기…‘페이퍼 컴퍼니’ 설립은 개인적인 일, 회사와는 무관(MBC TV)”
이 뉴스에서 회사 관계자가 사용한 ‘개인적’이라는 표현은 사전적 의미에 부합한다. 사전에서는 ‘개인적’을 ‘개인에 속하거나 관계되는. 또는 그런 것.’이라고 정의한다. 말하자면 경영인들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것은 회사 경영차원에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목적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므로 ‘사적(私的)’이라는 의미로 해명했다.
이 뉴스의 말미에 “‘사적이든 공적이든’ 페이퍼컴퍼니가 탈세와 비자금 조성 수법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세무조사 등 향후 미칠 파장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는 언급이 있음을 볼 때 ‘회장 개인’은 ‘사적’, ‘회사 차원’은 ‘공적’으로 본다는 시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가보조금 개인적으로 쓴 어린이집 원장들(매일신문)” 등도 바른 표현들이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표현은 어떨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김동완, 포미닛에 사심 ‘개인적으로 좋아한다’(뉴스엔)”
이 말은 다른 사람, 또는 그룹 ‘신화’의 다른 멤버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포미닛을 좋아한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개인적으로’를 ‘사적으로’와 같은 표현으로 썼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개념을 의도적으로 개입시키지 않았다면 “나는 포미닛을 좋아한다.”라고 하면 될 것을 불필요하게 ‘개인적으로’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되고 만다. 한 프로그램에서 리포터가 “오늘 저녁에 뭐 드실 거예요?”라고 행인에게 물었을 때 “저는 개인적으로 냉면을 좋아해요”라고 대답한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반대되는 개념은 단체 집단 전체 군중 등이다. ‘개인적으로’와 대립되는 개념으로는 ‘공적(公的)으로’를 들 수 있는데 ‘국가나 사회에 관계되는. 또는 그런 것’이라고 사전에서는 정의한다. 이렇게 볼 때 어떤 이가 ‘개인적으로’라는 표현을 썼을 때는 공적(국가나 사회에 관계되는), 단체, 전체 등의 개인적(사적)과 대립되는 위치 처지 입장 지위 등이 존재할 때는 올바른 표현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쓸데없는 말이 들어가는 경우가 되고 만다.
물론 ‘개인적으로’라는 표현이 들어갔을 때 생기는 어감의 차이는 당연히 있다. 문제는, 쓸 ‘개인적으로’가 들어가지 않아도 뜻이 전달 될 자리에 습관적으로 ‘개인적’을 넣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표현을 일부 연예인 등이 방송에서 자주 쓰는 것으로 보아 스스로를 국가나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공인(公人)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것은 연예인이 아닌 사람을 ‘일반인’이라고 부르는 그들의 언어습관에서도 엿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많이 쓰는 불필요한 표현으로 ‘-에도 불구하고’가 있다.
① 류현진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다시 마운드에 올라 데뷔 첫 완봉승을 거뒀다.(머니투데이)
② ‘상어’, 호평 불구하고 시청률은 하락세 ‘왜?’(마이데일리)
이 두 문장은 미세한 차이를 보인다. ‘불구하다’는 ‘불구(不拘)’를 어근으로 하여 ‘만사를 불구하고’, 또는 ‘-에도/-음에도 불구하고’ 등의 주로 관용구로 쓰이며 “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①은 (부상에)얽매여 거리끼지 않고 완봉승을 거두었다가 성립되지만 ②는 호평에 얽매여 거리끼지 않고 시청률이 하락됐다(?)가 되므로 어색하다. 즉 ‘불구하다’의 앞에 오는 부정적인 조건을 이겨내고(얽매이거나 거리끼지 않고) 뒤에 오는 좋은 결과를 얻거나 했을 때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표현이 된다.
이 경우 ‘-에는불구하고’를 ‘-지만’, ‘-인데도’ ‘-임에도’ 정도로 바꾸어주면 문장이 자연스럽다. ①은 “류현진은 부상을 입었지만(입었는데도) 완봉승을 거두었다”로, ②는 “‘상어’, 호평을 받았지만(받았음에도) 시청률은 하락세...”가 된다. 마찬가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다’는 ‘그런데도 ~했다’로 바꾸어 쓸 수 있다.
군더더기를 끼워 호흡과 말의 자릿수를 늘리는 현상이나 외국에서 온 번역투의 표현이 방송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쓰는 표현으로 굳어가고 있다. 말과 글을 잘 다듬어 보석처럼 빛나게 쓰는 것도, 우리 생활 주변 깊숙이 파고든 외국어식(영어 일어)의 표현을 가려내는 것도 우리 문화를 지키는 일이다.
최인락 NSP통신 칼럼니스트는 부산외국어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을 공부하고 있다. 1983년 CBS를 시작으로 부산MBC, 부산TBN 등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 ‘낭만이 있는 곳에’ 등을 진행한 30년차 방송인이다. 다문화사회를 위한 '한누리방송(kmcb)'을 운영하며 6월 말 개국을 목표로 지역공동체라디오 ‘라디오 절영’을 준비 중이다. (사)한국다문화예술원 부산본부장. 한국방송언어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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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남선 NSP통신 기자, aegookja@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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