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NSP통신] 임창섭 기자 = 최근 LG경제연구원이 발간한 ‘LG료망중국(China Insight) 11월호’(제37호)에 중국과 관련해 매우 눈길을 끄는 내용이 실렸다.

중국의 유명 경제주간지 ‘신차이푸’의 창간 10주년 기념 특집호를 다뤘는데 이 특집호에는 지난 10년간 중국에서 성공한 4개 회사의 대표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10인의 기업가들이 집중 조명돼 있다.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로 꼽힌 4개사는 레이스조명, 신둥팡, 징둥상청, 텅쉰 등이었으며 기업가 10명에는 량원건, 류용싱, 션원룽, 마윈 등 기라성 같은 스타경영자들이 망라됐다.

연구원은 중국 토착기업들의 경쟁력 수준을 가늠해보고 중국 경영 및 비즈니스의 왕도가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고 밝혔다.

본 통신사는 중국의 10년을 들여다본다는 의미에서 ‘LG료망중국(China Insight) 11월호’에 실린 중국의 회사들을 모델별로 게재하고자 한다. 스타경영인은 모아 소개한다.(편집자 주)

[1]류용싱

중국 기업가 사회의 별종. 골프를 치지 않고 각종 경제포럼에도 잘 참여하지 않는다.

한때 중국 최고의 거부가 된 적도 있으나, 1세대 기업가의 소박한 습성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400위안으로 11벌의 티셔츠를 사 입는다니, 더 할 말이 있으랴.

일찍이 농업 분야에서 토대를 닦았으나, 가슴 속에는 거대 제조업체의 꿈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한때 ‘대만 경영의 신’이라 불리던 대만플라스틱의 왕종칭에 흠뻑 빠져들었으며, 자신도 사료, 철강, 석유화학을 아우르는 비즈니스를 한 번 해볼만 하겠다는 자신감에 넘쳤다.

심지어 왕용칭을 대신하여 무보수로 3년간 대만플라스틱에서 일을 해봤으면 하는 생각을 품기도 했다.

그는 왕용칭에게서 큰 깨달음을 얻어, 사료, 리신, 산화알루미늄, 화력발전, 전해알루미늄 등 다양한 산업을 상류와 하류로 연결시켜 하나의 거대한 산업복합체를 만들었다.

그 결과 상하류 간 수직연관 체계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각 부문의 구매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동생인 류용하오와는 달리 그는 자본시장에 대해 줄곧 저항적이있다.

“만일 내가 주식시장에서 수십억 위안을 벌게 된다면, (언제 또 그 돈을 잃게 될지) 엄청난 두려움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였다.


[2]량원건
1980년대 양(羊)을 팔았던 그는 오늘날 ‘중국 내륙의 최고 부자’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다.

10년 전 중국 중공업시장에서 민첩하게 기회를 포착한 것은 물론 산이중공업(三一重工)이 중국 지분분할 개혁을 선도했던 점을 감안하면, 변화하는 정세에 대한 그의 전략적 안목은 탁월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산업적 이상은 ‘중국 민족공업의 시험장과 세계적인 중국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산이중공업은 창립 이래 지금부터 중국 제조업의 병폐인 단순가공을 버리고, 자주혁신의 외길을 고집해왔다.

현재 산이중공업의 수출시장은 이미 동유럽,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동, 러시아, 남미 등 세계 곳곳을 아우르고 있다.

바야흐로 중국 경제의 전환기에는 ‘품질로 세계를 바꿔나가는’ 민족공업 브랜드가 더욱 많이 필요하다.

그가 중국 제조업의 희망으로 칭송받는 이유이다.


[3]션원룽
‘철강 차르’로 불리는 그는 갈수록 많은 대중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2009년 200억 위안의 자산으로 ‘신차이푸 부호 500명’의 첫 번째 자리에 올랐다. 그는 주식시장 바깥에서 부를 일궈 최고 거부가 된 첫 사례다.

탁월한 시장 안목, 전략적 포석, 원가 통제 등으로 매 시기 가장 적합한 발전전략을 찾아내 샤강그룹을 일개 조면(繰綿)공장에서 몇 번의 도약을 거쳐 중국 최대의 민영 철강기업으로 변모시켰다.

그는 1968년 중등전문학교 졸업 후 샤강의 전신인 장쑤성 샤저우(沙洲)현에 있는 한 방직공장의 기술공이 되었다.

1992년 사강그룹이 설립되었을 때 이미 회장과 총재를 지낸 바 있다.

샤강의 개혁 이후 그는 2004년 29.4%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가 되었다.

그가 샤강을 이끌었던 시기에 그 자신의 강하고 억센 기질은 기업 분위기에 막대한 영향을 줬다.

그는 “나는 분명 사납고 억세지만, 난 끊임없이 나 자신을 부정해왔다. 지난 30년은 부단한 자기부정의 세월이었다”고 일갈한다.

임창섭 NSP통신 기자, news1@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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