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DIP통신] [강은태 기자] = 민주당 서울시당 사무처장 출신으로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김 윤 양천구청장 예비후보는 1957년생으로 전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조동대학원 노동법학과를 졸업한 노동운동가다.

◆ 지을 수 없는 아픔 간직한 청소년

그는 유년과 초·중학교 시절은 어려움이 없는 환경에서 지냈으나 18세 되던 해인 고등학교 3학년 때 예기치 않은 사고로 부친을 잃은 후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인격이 형성되고 삶의 가치관이 정립되던 시기에 맞부딪친 시련은 경제적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정신적으로 극도의 번민과 방황에 시달리면서 김 윤은 모친을 도와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게 된다.

김 예비후보는 “돌이켜보면 경제적 어려움도 문제였지만 삶의 스승이자 멘토(부친)가 없어 젊은 날 선택의 기로에 선 매순간 마다 방황했던 것이 가장 큰 아픔이었다”고 회상한다.

◆ 노동운동 그 힘든 여정의 시작

김 윤은 1984년 기업에 입사한 후 노동현장에서 겪게 되는 사용자들의 권위적 노동통제와 착취 수준에 가까운 임금 및 열악한 노동환경과 복리후생의 구조적 병폐를 보면서 점차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김 예비후보는 “이것은 군부정권이 조장한 개발독재의 폐해로써 민주주의, 인권, 복지 등이 무시되는 그 당시 사회적 현상이었으나 인간다운 삶과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생존권적 기본권조차 안중에 없는 정권과 자본의 횡포에 집단적 저항의 필요성을 느꼈다면서 노동조합의 결성을 주도해 1988년 노동조합 설립에 성공해 민주노총 합법화에 큰 힘이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 예비후보는 20대 후반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의 길로 접어들면서 노동자들의 생존권적 기본권 뿐만 아니라 소외되고 그늘진 곳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복지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특히, 우리사회 부의 분배와 사회보장제도 등의 실현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 노동운동에서 정치권으로의 진입

김 예비후보는 1997년 재야, 시민사회 등 제야세력과 연대해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도운다.

그리고 1998년에는 최윤, 문용식, 이인영, 허인회, 유용화 등 노동, 시민, 정치권 인사들과 ‘청년개혁연대’ 라는 단체를 구성해 김대중 정부의 개혁과 노사정 사회적 합의를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김 예비후보는 이 시기에 대학원을 다니며 ‘사회적 보장제도, 즉 복지문제가 해결되면 노사 간의 사회적 충돌도 노노간의 임금격차에서 발생되는 갈등도 최소화 할 수 있다’, ‘복지가 노동문제의 해결에 접점이 된다’고 판단하게 된다.

김 예비후보는 “ 그가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 겪었던 시련의 시간이 노동과 복지문제 및 사회적 약자와 사회보장제도 등을 고민하는 단초가 됐다”고 기억하고 있다.

◆ 노무현 캠프 합류 본격적 정치

2002년 8월 김 예비후보는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캠프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당시는 민주개혁진영이 분열하면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하던 중이어서 민주개혁진영의 단결과 후보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시점이었다.

따라서 그동안 사회적 병리현상인 지역갈등, 계층 간 갈등, 권위주의의 청산 등 통합과 개혁을 부르짖는 노무현 후보의 주장에 동의했던 민주노총 소속 전·현직위원장인 김영대, 홍영표, 박태주, 심일선, 장훈 등 30여 명과 같이 ‘개혁과 통합을 위한 노동연대’ 라는 모임을 만들어 노동계에 노무현 후보 지지자들을 조직화하고 노 후보의 당선에 큰 힘이 된다.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 사회분과에서 활동 했고 열린우리당 창당발기인을 거쳐 2004년 총선선대위 조직위 부위원장을 맡아 총선 승리의 기쁨을 함께했으며 2006년 지방선거 선대위 조직위원장과 2007년 정동영 대통령 후보의 조직특보를 역임하게 된다.

◆ 민주당 서울시당 사무처장

김 예비후보는 2008년 8월 민주당 서울특별시당 사무처장의 직책을 맡아 2010년 10월까지 임기를 수행한다.

그리고 김 윤은 임기 중 지역위원장, 당원들과 함께 ▲언론장악 음모 저지 ▲ 언론악법 원천무효 ▲종부세 개악저지 ▲ 4대강 사업저지 ▲ 광장조례 개정 ▲무상급식 서명투쟁 등을 함께 했다.

또한 임기 중 노무현, 김대중 두 분 대통령의 국상을 치루면서 아픔도 함께 하고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지역의 대승을 이끌면서 임기를 유종의 미로 마치게 된다.

김 윤은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을 하면서 민주당 입당은 조금 늦었지만 줄곧 서민층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헌신해왔고, 민주당의 선명성을 확보하고 정체성을 지키는 데 앞장서 왔다.

◆ 민주당 서울시당 사무처장에서 양천구청장 출마

‘이 당 기웃, 저 당 기웃’ ‘안되면 무소속행보’를 하는 구태인물들이 양천에 있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김 윤은 민주당 뿌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정체성에 대한 자긍심이 있다.

따라서 그는 2011년, 양천을 개혁하고자 민주당 서울시당 사무처장에서 양천구청장 출마를 결심 한다.

현재 양천구는 목동과 非목동으로 구분되는 지역 간 불균형으로 마치 서울 강남・북 불균형의 축소판으로 비교되어 양 지역 간 주민들의 이해가 상충하는 등 주민화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권역 간 특화된 계획을 통해 목동지역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非목동 지역은 생활환경 개선사업을 통해 더불어 잘 사는 양천구를 만들 것을 공약하고 있다.

◆ 김 윤 양천구청장 예비후보의 공약들

김 윤 예비후보는 양천구와 관련해 ▲학생과 학부모가 행복한 교육1번지 ▲ 젊은 부부들이 선망하는 육아 ․ 보육 제일 도시 ▲ 자영업자 보호육성과 재래시장 활성화를 통한 서민경제 활성화 ▲ 친환경적이고 주민참여형 재정비 사업 추진 ▲ 경전철 사업성 확보 방안 마련 ▲ 항공기 소음피해지역 보상 해결로 교통문제 및 소음문제 해소를 공약으로 약속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 윤 양천구청장 예비후보는 자신이 양천구청장에 당선된다면 서울시에서 가장 낙후된 신월동과 신정동이 포함된 양천구를 서울특별시 복지특별구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한편, 김 예비후보는 오는 10월 26일 치러질 양천구청장 재선거에서의 승리로 양천구민과 민주당원을 비롯, 야4당과 시민사회가 다시 한 번 2010년 승리의 감동을 맛 볼 수 있으며 2012년 총선 승리와 정권 탈환의 디딤돌 역할을 반드시 하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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