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NSP통신) 박지영 기자 = 이 책은 정치와 경제(시장),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와 상호 작용에 초점을 맞춰 주요 정치경제학자들의 쟁점과 흐름을 고찰했다.
정치경제학의 시각에서 플라톤(Plato),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부터 홉스(Hobbes), 로크(Locke), 루소(Rousseau) 등과 같은 대표적인 근대적 자유주의자들 그리고 벤담(Bentham)과 밀(Mill) 등의 공리주의자,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을 거쳐 롤스(Rawls)와 좌파 자유주의자에 이르기까지 정치경제학과 관련한 다양한 쟁점과 주요 흐름들을 성찰했다.
사실 ‘정치경제학’이라는 용어는 1760년대 리카도(Ricardo) 등으로 상징되는 영국 고전학파가 가장 먼저 사용한 학문 분과의 이름이었다.
정치경제학은 원래 자본주의 경제 발전을 위한 국가 개입 또는 자본주의 발전이 요구하는 국가의 역할을 다룬 학문으로 ‘경제학’의 모태라고 볼 수 있다.
비록 마르크스(Marx)가 정치경제학 비판(A Contribution to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을 통해 자본주의 지배계급과 질서 유지에 기여하는 정치경제학을 비판했지만 정치경제학의 근본 취지는 경제와 정치의 밀접한 관계에 주목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상호보완적 발전을 모색했다는 것.
정치경제학의 흐름을 살펴보면 정치에 대한 정의와 역할이 상이했다.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시각도 서로 달랐고 대립적이었다. 때로는 양립 불가능한 측면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왔다.
고전적으로 정치에 대한 개념은 현실적으로 아주 제한된 사회적 가치들-부, 지위, 명예, 기회 등-에 대한 경쟁과 권위적인 배분으로 정의됐다.
정치는 희소한 자원을 둘러싼 ‘게임의 규칙(the rules of the game)’을 결정하고 관리하는 것이며 개인과 집단들 사이의 갈등을 조절하고 통합하는 기술로서 규정된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이런 정의는 현실적인 설명력은 있지만 정치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중요한 흐름 중 하나는 정치는 단순히 개인의 부, 명예, 이익 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다양한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도덕과 인간성, 자유와 능력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함양할 수 있는 근본적인 가치를 갖는다는 주장이었다.
정치는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맹목적으로 질주하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정치경제학뿐만 아니라 정치발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다.
정치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서 국가의 역할 또한 대단히 논쟁적인 주제다. 이 주제는 정치철학적으로 우파 자유주의와 좌파 자유주의 혹은 급진적인 정치경제학의 논쟁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우파 자유주의는 사회계약설에 기반하여 ‘국가의 중요한 역할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비해 좌파 정치경제학은 ‘평등이나 유대감, 혹은 공동선과 같은 특정한 가치를 함양하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우파 자유주의가 시장자본주의와 개인의 능력, 경쟁 등을 배타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면 좌파 정치경제학은 개개인의 덕성 함양과 복지 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국가의 존재목적과도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과연 절차적으로 보느냐 실질적인 참여의 평등으로 보느냐의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정치경제의 지배적인 사상적 기조는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시장의 경쟁 원리와 이윤 추구의 논리를 일국적 차원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가히 세계적인 문명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IMF와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관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통해 명실공히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속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경제 성장만큼이나 빈부격차 및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공동체의 연대와 유대의 토대를 붕괴시키면서 민주주의를 위축시킨다는 비판도 세계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책의 맥락에서 보면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된 흐름은 ‘자본주의 시장의 우선성과 민주주의의 위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난 2016년 광장을 뜨겁게 달군 촛불 집회처럼 상황과 맥락에 따라 민주주의가 분출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민주주의 발전에 필요한 시민적 덕성과 공동체 의식이 많이 위축돼 있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그런데 고대부터 현대까지 정치경제학의 일관된 흐름을 살펴보면 결국 ‘경제성장 및 부의 분배와 정치권력의 균형과 조화를 어떤 수준에서 어떻게 달성하는가가 오랜 과제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즉 ‘지금 여기’의 문제는 이미 기원전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했던 인류의 공통된 과제였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적 부의 문제는 정치적 독립성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기 때문에 시민적 덕성은 단지 정치적 제도나 교육만이 아니라 경제적 조건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적 불평등의 조건은 제한되어야 하고 광범위한 중산층이 중요한 정치적 공동체의 중추가 돼야 한다고 보았다. 때문에 이를 위해 토지 소유에서 일정한 한도의 제한을 부여하고 가난한 이들의 독립을 보장할 수 있도록 고용과 토지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재산 역시 사적 소유뿐만 아니라 공공선의 관점에서 다스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공화주의, 사회주의 및 현대의 민주주의자들에게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의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했던 자유주의자들 역시 부의 격차가 공화국의 치명적인 위험이 된다는 경고에 나름대로 대응하면서 시장과 정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이 발전해 온 것이다.
미국 건국에 영향을 미친 해링턴(Harrington)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은 자유로운 공화국에 암적인 요소임을 강조하면서 적절한 규모의 소유를 통해 독립성을 구가할 수 있는 중산층 계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해링턴은 역작 오세아나 공화국(The Commonwealth of Oceana)에서 다수 인민이 공평한 토지 소유로 인해 진정한 주권자가 되는 공화국은 재산의 균형위에 수립됨으로써 안전하고 완전한 공화국이 될 것이며 이와 함께 직접민주적인 아이디어 즉, 공직의 순환적 교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7세기 초의 이러한 고민과 이상적인 원리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고전적인 혜안이 될 수 있다.
이런 고전의 힘을 재해석하고 현대화시켜 현대 정치경제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근본적인 집필 동기이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고전 사상가에서 논의를 출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다루는 시대와 사상가들의 문제의식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이 거칠게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정치와 경제는 어떤 상호작용 관계에 있는가? 둘째, 부의 분배를 정당화하는 논거는 무엇인가? 셋째, 용인될 수 있는 불평등은 어느 정도인가? 넷째, 집단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과 범주는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다섯째, 정치공동체의 주체는 엘리트인가? 대중인가? 여섯째, 국가(정치권력)은 시장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일곱째, 현대 정치사회의 가장 중요한 제도인 시장과 민주주의 중에서 어떤 제도가 우선적인 중요성을 갖는가? 여덟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상생적인 발전이 가능한가?
물론 이런 질문 외에도 정치공동체와 경제적 토대를 둘러싼 다양한 세부적인 주제들이 논의될 것이다.
한편 저자 김성수는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입학한 후 American University에서 정치학학사, Marymount University에서 인문학석사 그리고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USC)에서 정치학석사와 비교정치, 정치경제, 정치이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학원 재학 중 USC Graduate Fellowship, Phi Beta Kappa Honor Society Dissertation Scholarship, Jesse M. Unruh Institute of Politics Research Fellowship 등의 연구지원과 더불어 Korean Heritage Foundation Award를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한국연구재단의 장기과제 신흥지역연구사업으로 선정된 유럽-아프리카 연구소 소장으로 재임 중이다.
대표적 학회활동으로 한국정치학회 대외협력이사 와 한국국제정치학회 연구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2017년에 연구성과우수자로 교육부장관 표창을 받았으며 유럽-아프리카 연구소는 ‘한국중소기업의 아프리카진출을 위한 사업전략 및 비즈니스모델 개발’로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우수연구기관으로 소개됐다.
주요저서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비교정치세계속의 아프리카 The Role of the Middle Class in Korea Democratization 등 다수의 서적을 집필했으며 비교정치와 정치경제 그리고 아프리카지역 연구에 관한 상당수의 논문을 KCI와 SSCI에 게재하고 있다.
NSP통신/NSP TV 박지영 기자, jypark@nspna.com
저작권자ⓒ 한국의 경제뉴스통신사 NSP통신·NSP TV.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