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NSP통신) 강수인 기자 = 마치 정교하게 깎아낸 나무 오르골같은 배우 지승현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비결로 “타인을 축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규 장군님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연기를 했더니 오히려 본인이 알려진, 말 그대로 그의 성공 비결이다.
9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지승현은 KBS2 ‘고려 거란 전쟁(이하 고거전)’에서 양규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친 소회를 털어놨다. 양규 장군은 고려를 침략한 거란에 맞서 싸운 구국 영웅이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날은 오전부터 내내 눈이 내린 날이었다. 지승현은 “지금도 양규 장군님이 곁에 와 계신 것 같다”며 “현장에서도 기가막힌 타이밍에 안개가 끼거나 눈이 그치는 등 양규 장군님이 함께하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PD님과 스텝들도 ‘장군님 오셨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대하드라마의 실종’이라며 시청자들이 안타까움을 드러냈지만 이번 고거전으로 시청자들의 갈증이 완전히 해소됐다.
그는 “대하사극이라는 장르가 꾸준히 만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의 경우 항상 영웅들을 끄집어내고 그 시대에 어려움이 있을 때 이를 통해 극복하려 한다. 우리나라는 그런 부분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은 보다 앞선 시대에 양규를 비롯한 여러 장군들을 추앙해온 것에서 이어진 것이다. 묻혀있는 영웅들의 이야기, 민초들 사이에서 탄생한 영웅담들이 퍼졌을 때 나 역시 저렇게 할 수 있다는 마음, 코리아가 왜 코리아인지 그 뿌리를 알려줄 수 있다”고 말했다.
영웅의 역할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양규 장군 역할을 위해 지승현은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참고하지 않고 상상과 집중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는 “양규장군의 모습을 대본에서 유추해 나름대로 말투와 표정을 만드는 작업을 했고 혼자 촬영도 많이 해봤다”며 “영화 실미도의 안성기 선배님의 대사인 ‘군인은 군인의 몫을 하고 각자 맡은 바를 잘 하면 나라가 잘 되는 것 아니냐’라는 문장을 들었을 때 양규 장군의 모습이 머릿속에 느낌표처럼 박혔다”고 말했다.
연기 18년차, 20부작 드라마에서 1회 1씬이 등장하는 단역배우로 데뷔해 영화 ‘바람’을 거쳐 드라마 ‘태양의 후예’, 지금의 ‘고거전’ 양규장군까지, 지승현의 삶은 한 마디로 ‘버티기’였다. 쉽지 않은 배우의 길을 버티게 해준 힘은 그의 마인드컨트롤이다.
지승현은 “내 일이 잘 안 풀릴 때엔 타인을 축복하라는 글귀를 봤다”며 “타인에게 에너지를 주면 그 에너지가 나에게 돌아오더라. 양규장군님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더니 지승현이 살았다. 그렇게 에너지를 주고받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다독(多讀)과 꾸준한 일기쓰기 역시 그의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든 힘이다. 그는 “매일 아침에 읽는 열 가지 문구가 있다. 첫 번째가 ‘나는 세계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배우다’이고 마지막 10번째는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다. 어려운 촬영이 있을 때 이 문장들을 되새기고 잘 할거라는 자기 암시를 한다. 책을 읽으면 안 좋은 에너지를 떨쳐버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촬영장 출퇴근길에 책을 항상 읽는 지승현이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마흔살에 읽는 쇼펜하우어’다. 인생책으로는 ‘연금술사’를 택했다. 그는 “모든 사람은 다 어렵고 내 뜻대로 안 되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좋은 글귀를 적어두고 붙여두고 읽으며 잠재의식 속에 집어넣는 것”이라며 “‘너는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이다’라는 마음을 가지면 그만큼 연습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쉴 때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며 유행이 뭔지 잘 모르는 사람, 그는 “아무도 나를 몰라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배우가 그 배우야?”라는 말이 그에게는 칭찬이다. 새로운 모습을 연기를 통해 보여주며 “연기 잘 하는 배우”라고 칭찬하면 온 세상을 가진 것 같다는 지승현이다.
끝으로 그는 “양규장군님을 포함한 그분들이 목숨을 바쳐 고생하셔서 우리가 코리아에 살고 있다”며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몽골어를 쓰고 있거나 일본어를 쓰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분들의 업적을 더 찾아내고 발굴해 대하사극을 많이 만들어서 보여드릴 필요가 있다. 그것이 대하사극이 가진 의의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NSP통신 강수인 기자(sink606@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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