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NSP통신) =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기후 변화의 꼭지점에 서 있는 한반도의 여름이 심상치 않다.
전통적인 삼한사온은 실종된 지 이미 오래고 한반도 여름철을 특징짓는 장마와 폭염 그리고 태풍이라는 공식도 지난 몇 년 전부터 들어맞지 않고 있다. 그 때문인지 정부는 앞으로 우리나라 여름을 우기로 조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올해는 장마도 길었고 강우량도 역대급 재난이었지만 짧아진 폭염 기간에 쏟아진 국지성 집중호우와 온열 환자의 대거 발생, 집단 사망도 이미 예년 같지 않은 재난의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 곧 닥칠 8월 태풍도 역대급일 것이라는 예보도 심상치 않게 흘러 나오고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작년에도 역대급 재난 상황을 겪고 나서 댐 물 터지듯 재해에 대한 복구와 재난에 대한 대책을 쏟아냈지만 올 재난 상황에 도래해선 그 어느 하나 개선되지 않았고 반복된 재난 상황에 대한 대비 역시 준비된 것 하나 없이 애꿎은 민초들만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감내 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이번 재난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역대급 장마와 폭염, 태풍일 것이라고 방송에서 수없이 떠들었다. 그런데도 상황은 예년과 한치도 달라진 바 없다.
그 위기의 서막은 지난달 역대급 장마 와중에 24명(14명 사망, 10명 상해)의 사상자와 차량 17대 침수 피해를 낸 충북 청주 오송의 궁평2 지하차도 참사로부터 시작된다.
이 참사로 인해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자연재해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는 당사자들에게 정부가 궁휼의 책임감으로 보상해주는 차원이 아닌 이미 드러난 재난의 원인에 대한 정부의 부실 방제 책임과 재난 상황에서 미흡한 대처로 인해 발생 된 피해에 대해 공공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재난을 ‘인재’로 보는 시각이 자리 잡아가는 정착되는 기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검찰이 직접 나서 미호천 제방 시공업체와 감리업체를 필두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청주시, 충북경찰청, 충북소방본부, 충북도청 등 5개 기관을 압수수색하고 국무조정실에서 감찰 조사를 진행해 36명을 수사 의뢰하고, 63명을 소속기관에 징계 조치 건의했고 충청북도 정무부지사 그리고 청주시와 행복청의 정무직 해임을 건의했다.
하지만 충북도지사와 청주시장은 선출직이라 검찰 수사와 사법기관의 판단에 맡긴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궁평2 지하차도 참사 유가족들은 충청북도지사와 청주시장, 행복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을 상대로 중대재해 처벌(중대시민재해) 등에 대한 법률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이 그것이다.
두 번째로는 부산의 또래여성 살인사건에 이어, 역대급 장마와 폭염의 피해로부터 직접 피해를 입고 있는 국민들에게 다가선 ‘묻지마 살인사건’이라고 불리우는 신림동에 이은 서현역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을 보는 시각 역시 역대급 재난에 대해 자연재해로 보는 시각과 다르지 않다.
위 사건들이 연고가 없는 일반인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고, 원인을 알 수 없고, 당사자가 마약을 했는지, 정신병을 앓고 있는지 모르지만 ‘무차별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묻지마 살인’을 ‘테러’에 준하는 사건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대응을 약속하고 있다.
이것 역시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흉기를 가지고 일면식도 없는 모르는 사람을 살해하는 것을 예상할 수 없는 ‘우연’한 시간에 벌어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자연 현상’으로 보는 ‘자연재해’ 시각과 다름없다. 이 논리를 빌어 정부와 사회는 그 책임에서 빗겨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일면식도 없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른다면, 그거야말로 면식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 차원의 사건이 아니라, 그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 체제 전반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 ‘사건’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즉 무차별 시민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은 적어도 누군가를 죽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만큼 분노와 원망이 가득 차 있다는 것, 그럼 에도 불구하고 이 분노와 원망을 자신의 면식 있는 주변을 통해서는 도저히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니클라스 루만 식으로 말하면 어느 체계에도 속할 수 없었던 인간이고, 조르지오 아감벤 식으로 말하면, 희생양으로도 쓰이지 못할 정도로 버려진 인간이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유로 가득 차 있었지만 이를 해소할 어떤 길도 찾을 수 없었던 인간들을 ‘자연 재해’, ‘테러’로 규정하고 ‘책임 회피식 방치’를 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또 하나, 이 사건의 원인으로 보고 있는 ‘정신질환’에 해당 되면 모두 ‘묻지마 살인’을 하느냐 문제다. 중증의 정신질환자 중에 일부 폭력성을 가진 환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폭력성이 곧바로 살인이란 구체적인 행동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신질환자는 단순한 환자가 아니라 비정상인이고, 사회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잠재적인 범죄자로 의심하거나 지목하는 사회는 푸코식의 보이지 않은 감시와 처별이 존재하는 ‘야만사회’와 다름이 아니다. 그렇기때문에 이 사건과 관련한 보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부 전문가로부터 표출되는 색다른 의견들처럼 설사 그런 폭력성을 보인 환자에 대해서조차도 관리책임은 국가(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모든 죽음에 원인이 있듯, 살인에도 원인이 있다. 연고가 있는 살인보다 연고 없는 살인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그 원인을 우리 사회와 국가가 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바이며 우리 사회나 정부가 수없이 많은 젊음을 내 팽겨쳐 버리고 있다는 증거다.(박태순 글 인용)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묻지마, 살인’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다. 서현동 살인사건으로 아내를 잃은 남편이 피해 현장에 가져다 놓은 ‘아내가 좋아하는 빨간 꽃과 평소 즐기던 디카페인 커피 그리고 착한 당신! 지켜주지 못해 너무 미안해요. 당신 정말 사랑해요’라고 적힌 메모와 같은 ‘피끓는 절규’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터진 서울 서이초 교사 자살 사건으로 수십 년 동안 묵혀져 왔던 학생 인권과 교권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와 사회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그동안 학교나 교육 당국은 이런 문제들이 터져 나올 때마다 꾹꾹 눌러놓기만 했을 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커녕 책임회피에만 급급해 왔다. 터질 게 제대로 터져 나왔다는 반응이 사회 곳곳에서 자리 잡고 있다.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 여기에 교육 당국과 사회 더 나아가 국가가 한 곳에 집중 돼 있는 곳이 학교 현장이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의 핵심 사안은 교사의 가르칠 권리와 학생의 배울 권리다.
그리고 교육은 이 두 개의 권리가 합리적으로, 효율적으로, 정서적으로 융복합되어야 미래의 국가 동량이 될 학생들을 사회의 자원으로 진출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에게 학생들을 의미 있게 가르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제공해줘야 하고 학생들은 그 의미있는 내용을 제대로 학습할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을 제공해줘야 한다.
그 시각에서 이번에 닥친 교육의 위기 역시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의 시각으로 학부모와 교육 당국의 위상과 역할을 제대로 자리매김하도록 국가의 책임 있는 자세와 사회 전반의 진실된 노력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결국 이렇게 거듭된 재난은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서 정점을 찍고 말았다. 국내 재난에 미흡한 대처가 이젠 한국에서의 대회가 ‘서바이벌 게임’으로 전락 되었다고 비아냥대는 국제적인 망신살이 된 것이다.
이 여파는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까지 예상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민간외교 사상 역대급 사건으로 기록될 이 행사에 대한 정치권의 대처는 정말 역대급으로 기록될 정도의 참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재난의 정치학’이 그 존재가치마저 부정당하는 순간에까지 와버린 것이다.
재난을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로 인식하는 순간, 재난과 연관되는 이해당사자들과 국가가 그 모든 책임을 총체적으로 져야 한다. 그 전제가 사라지는 순간 재난에 대한 정치의 영역은 사라지고 정치는 재난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재난의 정치학’의 요체는 ‘사회적 진정’이다. 그것은 정치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기반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사회적 신뢰‘는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아이가 발을 접질려 차도에 나둥그러져 있는데 부모가 서로 ‘상대의 책임’이라며 싸우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아이를 향해 차가 돌진하고 있는 형국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재난에 관해서는 매년 데자뷔다. 재난은 해를 거듭할수록 역대급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재난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은 역대급으로 후퇴하고 있고 책임 공방으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으며 그 모습이 매년 데자뷔(기시감, 旣視感)가 되고 있는 것이다.
재난은 민초들에게 생존이고 삶이고 인생이고 미래와 희망이 직결되는 사안이다.
특히나 역대급 재안에서 민초들에게는 재난 상황으로부터의 생존이 우선될 수밖에 없고, 재난으로 인한 피해는 당사자 삶 전체를 파괴할 정도의 재앙이며, 그로 인한 당사자 인생의 붕괴와 미래의 삭제이고, 희망의 불꽃을 사그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결국 사회의 역동성을 갉아먹고 지역경제를 붕괴시켜 다시 지역사회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따라서 재난에 대응해 개인에게, 지역에 변곡점을 줄 필요가 있는 것이고, 그 변곡점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와 정치의 역할인 것이다.
현재의 역대급 자연 재난은 기후 변화의 결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 정설이다. 인간의 이기심에 의한 기후 위기이고 이 기후 의기가 역대급 자연재해를 낳고 있고 이에 대한 인류의 대응이 세기의 화두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역대급 재난이 ‘자연재해’가 아니고 ‘인재’라고 할 때 이야기는 달라지고 그에 따른 인류의 대응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역대급 재난을 모두 기후 위기로만 해석하기는 쉽지 않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재난의 원인이 기후 위기로부터 오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로 판명될 때 그것은 ‘사회 위기’이며 ‘문화 위기’이자 ‘인간 위기’를 말함이며 결국 이는 ‘정치 위기’를 낳고 만다.
결국 이 모든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키는 ‘재난의 정치학’이고 이 핵심은 이런 총체적 위기를 유발하는 정치인의 생각과 사고를 어떻게 완전히 지울 수 있도록 포맷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때문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총체적 위기로 다가오는 역대급 재난을 예방할 수 있는 ‘재난의 정치학’이 제대로 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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