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최인락.

[부산=NSP통신] 도남선 기자 = 경제이론의 역사성을 강조했던 갈브레이스 교수의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표현이 우리 사회에서 널리 쓰인다.

국제정세의 불안과 변덕 많은 날씨에 장바구니 물가에 이르기까지 불확실한 요소가 많다.

이런 요소들에 영향을 받아서일까?

‘불확실한’ 언어 표현도 갈수록 심하다.

가) 남자MC: “자, 이 설명이 옳다고 생각하시면 오른쪽으로, 틀리다고 생각하시면 왼쪽으로 가 주시기 ①바라겠습니다”
나) 여자MC: “5초 남았습니다. 빨리 결정해 주시면 ②감사하겠습니다”
다) 남자MC: “네, 잠시 후에 정답을 ③알려드리겠습니다. 이렇게 OX게임에 참석해 주신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④드리겠습니다”

남녀MC의 대화에 ‘겠’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식의 표현은 방송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다.

방송에서 나온 표현이 시청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중간어미(선어말어미 先語末語尾) ‘겠’은 추측·예상, 의지·의도의 의미를 나타낸다.

‘겠’을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 미래의 일이나 추측(예: 잠시 후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2. 화자의 의지(예: 추신수 선수는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고 한다.)
3. 가능성이나 능력(예: 초등학생도 그릴 수 있겠다.)
4. 완곡하게 말하는 태도(예: 집으로 전화해도 되겠습니까?)

이 설명을 토대로 남녀MC의 대화에 나타난 ‘겠’의 의미를 살펴보자.

먼저 ①은 화자가 말하는 그 시각(발화시)에 자신의 바람(희망)을 나타내고 있다.

바람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겠’을 쓴 것으로 추측하지만 동사 ‘바라-’에 이미 ‘희망’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으므로 ‘겠’이 필요 없다.

“왼쪽으로 가 주시기 바랍니다” 로 충분하다.

②, ④는 화자 자신이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는 청자를 대상으로 ‘미래의 일이나 추측을 나타내는’ 의도로 ‘겠’을 잘못 쓴 경우이다.

이 말은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는 감사하다, 고마울 것이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가 올바른 표현이다.

반면에 ③은 발화시점과 행위가 다르므로 바르다.

말하는 지금이 아닌 일정 시간이 지나서 ‘알려주는’ 행위를 하겠다는 표현이다.

②, ④, ⑤는 발화와 행위가 동시 또는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이므로 잘못 쓰인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더 보자.

투수가 마운드에서 상대팀 타자를 압도하지 못하고 연타를 허용해 점수 차이가 커지자 해설자가 말했다.

“지금 A투수의 컨디션이 최악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최악입니다” 로 하면 될 것을 불필요한 조사를 써 ‘최악이라고’ 한 뒤에 다시 ‘말씀드리다’ 뒤에 ‘수’를 붙였다.

또 그나마 ‘있습니다’가 아니라 ‘있을 것 같습니다’로 말했다.

눈앞에 보이는 분명한 현상을 두고도 불확실한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정적으로 말했을 때 오는 책임을 피하기 위한 신중한 태도가 오히려 의미파악을 어렵게 만들고 말았다.

요즘 방송에서는 이렇게 불필요한 요소들이 첨가되고 또 이리저리 돌려서 말함으로써 의미 파악이 어려울 때가 많다.

심지어 “요즘 B팀의 성적이 회복 불능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상황으로까지 보여지는 것 같습니다”라는 표현도 들을 수 있다.

방송에서 나온 표현들은 금방 시·청취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법적으로 맞지 않거나 어휘의 사용이 잘못된 경우에도 언중들은 방송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된다.

비록 연예인이나 해설자들이 아나운서처럼 오랜 시간 갈고 닦은 바른 말을 쓸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방송에서는 걸러주는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얼마 전 한 다큐프로그램의 출연자가 “예전에는 장사가 너무 안 돼 고생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너무 잘 팔려요”라고 말했지만 자막에서는 의미 구별을 위해 ‘요즘은 아주 잘 팔려요’로 수정한 것을 본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의 의미로 쓰던 ‘너무’를 ‘매우, 무척, 아주’ 등의 뜻으로도 쓰고 있다. 또 일부 사전에서는 ‘속어’로서 매우, 무척이라는 뜻으로도 설명한다).

요즘 방송에서, 일상생활에서 화자의 발화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말이 넘쳐난다.

의미가 ‘불확실한’ 말을 하는 이에게 쉽고 바르게 말하기를 바랄 것인가, 듣는 이에게 잘 들어 제대로 알아듣기를 바랄 것인가는 판단하기 나름이다.

다만 (공영)방송에서는 ‘(진행자가)개떡같이 말해도 (시·청취자가)찰떡같이 알아듣기’를 바라서는 안 될 것이다.


최인락 NSP통신 칼럼니스트는 부산외국어대학교 한국어문학부와 일반대학원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의 박사과정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을 공부하고 있다. 1983년 부산CBS를 시작으로 울산, 마산, 부산MBC, 부산TBN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 ‘낭만이 있는 곳에’ 등을 진행한 30년차 방송인이다. 뜻을 함께하는 방송인들과 다문화 사회를 위한 '한누리방송(kmcb)'을 운영하며 5월 말 개국을 목표로 지역공동체라디오 ‘라디오 절영’을 준비 중이다. (사)한국다문화예술원 부산본부장. 한국방송언어연구원장.

본 기고/칼럼은 뉴스통신사 NSP통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도남선 NSP통신 기자, aegookja@nspna.com
<저작권자ⓒ 국내유일의 경제중심 종합뉴스통신사 NSP통신.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