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NSP통신) 조이호 기자 = 아이가 아픈 밤 갈 곳을 찾지 못했던 경험이 지역의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강릉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직접 나서 소아진료 공백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의 시민 참여형 후원 캠페인 ‘HB1985’를 출범시키며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번 움직임은 추석 연휴 무렵 한 부모의 현실적인 고민에서 시작됐다.
강릉에이엠브레드를 운영하는 김동일 대표는 갑작스럽게 열이 오른 아이를 안고 병원을 찾는 과정에서 지역 소아진료의 한계를 체감했다. “아이 아픈 밤을 언제까지 운에 맡겨야 하나”라는 질문은 곧 공감으로 이어졌고 뜻을 같이한 지역민 10명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이들은 모두 강릉에 터를 두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부모이자 지역의 구성원이다. 건도리횟집 신건혁 대표, 강릉에이엠브레드 김동일 대표, 경포동해횟집 최항석 대표, 법무법인 소울 이현우 변호사, 세인트존스호텔 김헌성 대표, 강릉한우금송아지 이동현 대표, 평창잣농원영농조합법인 권영만 대표, 강릉닭강정 정소미 대표, 강릉조은이플란트치과 이호찬 원장, 알 정선환 대표가 참여했다.
이들을 하나로 묶은 공통점은 야간과 휴일 소아진료의 어려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부족이라는 영동지역의 구조적 문제였다.
신건혁 대표는 “누군가는 이 문제를 이야기해야 했고 또 누군가는 움직여야 했다”며 “그 역할을 우리가 하자고 마음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소아진료 공백을 특정 병원이나 의료진의 책임으로 돌리기보다 지역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로 인식했다.
영동지역의 소아진료는 오랫동안 취약 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 야간과 휴일에도 안정적으로 아이를 진료할 수 있는 의료기관은 손에 꼽힌다. 의정 갈등 이후 의료 인력의 수도권 쏠림이 심화되면서 소아진료 공백은 더욱 커졌고 저출산과 고령화, 인구 감소까지 겹치며 지역 병·의원이 소아과 진료를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이 이어졌다.
이 부담은 사실상 영동권 유일 상급종합병원인 강릉아산병원에 집중돼 왔다. 병원과 지역 모두에게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구조라는 인식이 확산된 배경이다.
이 문제의식 속에서 탄생한 것이 ‘HB1985’다. HB는 ‘Human Blooming’, 생명을 피우는 마음을 뜻하고 1985는 캠페인을 제안한 신건혁 대표와 뜻을 함께한 구성원들의 출생연도에서 따왔다. 이들은 병원이 감당해 온 소아진료 부담을 지역과 함께 나누는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들자는 데 뜻을 모았다.
HB1985는 지난 14일 강릉아산병원 중강당에서 1억500만원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병원은 해당 기부금을 소아진료 인력 확충과 시스템 개선, 응급·야간 진료 대응력 강화에 활용할 계획이다.
신건혁 HB1985 사무총장은 “거창한 일을 하려는 게 아니라 내 아이가 아플 때 갈 곳이 없는 현실 앞에서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깨달음에서 출발했다”며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라고 말했다.
HB1985 구성원들은 이번 출범을 시작으로 더 많은 지역민의 참여를 이끌어낼 계획이다. 단순한 일회성 기부를 넘어 지역 의료진과 함께 아이들이 밤과 휴일에도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현우 변호사는 “부모가 만든 첫걸음이지만 지역을 지키는 힘은 결국 지역민에게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최항석 대표는 “부모로서 느낀 불안이 10명을 움직였고 이제는 지역을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이곳의 내일을 우리가 직접 밝힐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조용한 실천에서 시작된 HB1985의 움직임은 ‘아이 키우기 좋은 강릉’을 향한 지역의 선택이자 소아진료 공백 문제를 지역 스스로 풀어가려는 첫 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NSP통신 조이호 기자(chrislon@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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