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일석(一石) 정선영. (사진 = 김종식 기자)

(경기=NSP통신) 김종식 기자 = 48년간 흙을 만져온 도예가, 30년이상 화성에서 거주하며 흙을 빚어온 정선영씨를 화성특례시는 지난해 공예 명장으로 선정했다. 평생 흙을 빚어온 일석 정선영을 만나 도예가로 살아온 계기, 정선영만의 도예 색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자. <편집자 주>

- 도예가로 살아온 계기는

▲ 저는 인천광역시 석바위에서 태어났는데 우리 동네에는 벽돌 공장과 도자기 가마터가 많았다. 그 당시 친구들과 가마터에서 많이 놀기도 했고 썰매를 타다가 물에 젖으면 가마에서 말리기도 했다. 저는 어릴적부터 손재주가 좋아 썰매도 많이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는데 한 20여 개를 만들었다고 기억한다.

그런 저의 손재주는 흙으로 무엇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으며 주변에 가마가 많고 친구 부모님들이 그릇이나 도자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보고 호기심 반 재미 반 해서 도자기를 만들어 보면서 흙으로 물건을 만드는 것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보다는 도예에 관심을 가져 친구 아버지 가마에서 일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도예가로 뛰어들게된 계기는 전국에 도자기로 유명한 곳을 찾아다니면서 시작됐는데 청자, 백자, 분청사기로 유명한 전국 여러 곳의 가마터를 찾아가 자기를 배워가면서 그 열정이 더 커진 듯 하다. 어느곳에서는 흙 배합하는 일을 몇 달 동안 익히면서 배웠고 어떤 때는 불 피우는 일을, 또 어떤 곳에서는 도자기를 만드는 일을 배웠는데 문제는 중요한 일은 잘 가르쳐 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만의 기술을 습득하기도 어려웠겠지만 알려 주는 것에는 정말 인색한 분야인 듯하다. 저는 사람을 좋아했다. 자주 만나고 막걸리 한잔하고 하는 것에서 낭만을 찾기도 해서 자주 많은 분들과 이야기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기술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는데 그런 순간에서 자신도 모르게 기술을 풀어놓기도 했으며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기술을 배워갔다. 어떤 때는 불 때는 기술을 배울 때 불이 최고조로 올라가 작품이 절정에 오를때 쯤이면 술 심부름을 시켜 불의 기법을 모르게 하시는 분도 계셨다.

그러다 독립을 하게 되고 저는 나만의 기법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모든 분야를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돼 흙을 배합하는 기술, 물레를 이용해 자기를 형성하는 기술, 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기술, 유약을 바르는 기술, 가마에 불을 때는 기술 등을 익혀나갔으며 유약도 많은 실험을 통해 제가 직접 만들어 낸 유약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화성에 들어온 것도 벌써 35년이 지났다.

- 정선영 만의 도예 색깔이 있다면

▲ 저는 여주나 이천 등지에서 대량의 도자기가 생산되면서 그냥 눈으로만 보는 자기가 생활속에서 사용하면서 자기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한몫 했다고 본다. 공장형으로 쏟아내는 자기를 나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고가의 자기를 지켜만 보다가 가격이 저렴한 생활자기를 직접 사용해 보면 자기의 우수성을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 생활자기의 우수성을 사용해 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생활자기가 가지고 있는 보온성, 수백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오래되면 될수록 가치를 알게되는 이를테면 항아리라든지 찻잔, 국그룻, 밥그릇, 술잔 등 독소가 전혀 없으며 변하지도 않고 오히려 원적외선이나 흙이 가지고 있는 인체에 유익한 물질이 나오는 등 생활자기를 통해 삶의 질이 향상되고 최근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시대정신과도 걸맞는다고 생각한다.

흙을 빚는 사람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도예를 하기 위한 모든 것들이 이제는 돈과 결부돼 있는데 옛날처럼 아무곳에서나 흙을 마음대로 채취할 수도 없고 유약의 재료를 습득할 수도 없고 가마를 때기 위해 나무를 할 수도 없고 어쨌든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고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 그중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유작을 얻기 위해서는 많이 버려지기 일상이다. 이런 우리에게 생활자기의 활성화는 큰 도움이 된다.

정선영 작가가 요변기법을 활용한 도자기 접시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사진 = 김종식 기자)

저의 도예 색깔의 하나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도자기의 생활화다. 가정에서 일상에서 도자기의 우수성을 알아가면서 도자기가 일상생활 속에 놓여지는 것, 이를테면 해외에 나가면 작품 도자기를 판매하는 것을 많이 보기도 하고 우리들도 해외여행을 하고 돌아올 때 미니 도자기세트를 구입해 오는데 이런 방식으로 사용하고 전시하고 만지며 우리 생활속에 자기가 녹아들어야 한다는 것과 또 하나는 작품은 불이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세상에 똑같은 도자기는 하나도 없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도자기는 작품성을 잃은지 이미 오래 됐고 진정한 작품의 자기는 전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다.

저는 자기를 초벌해서 바로 유약을 바르지 않고 길게는 수년을 그냥 보관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두었다가 유약을 발라 가마에서 불로 구워졌을 때 풍기는 색감은 초벌하고 바로 구운 자기랑은 또 다른 오묘한 빛을 발하는 것에도 감동을 하기도 한다. 초벌한 자기가 바람을 만나고 먼지를 묻고, 습기를 머금고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학반응이 마지막에는 오묘한 빛을 풍기는 귀한 작품으로 만들어질 때 이러한 것이 도예가로써의 황홀함 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하며 이런 것들을 통해 더 많은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갖게 되기도 한다.

저는 유약이 불에 의해 녹아내리면서 만들어지는 문양을 오랫동안 연구해 여러형태의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수만 번의 착오를 시험 삼아 이제는 유약을 어떻게 배합하느냐 어떻게 바르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색깔을 만들어 내게 됐고 유럽에서는 저의 이런 작품세계에 관심을 가져 여러번 유럽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제 작품에 관심을 가졌던 한 프랑스 미술 비평가 필립 지깰은 작품들이 안료에서 얻어진 푸른 가지색, 유백색, 붉은색, 어두운 밤색으로 기품 있는 우아함을 지니고 있다. 경륜을 가진 도공이 굽는 과정에서 온도를 조절해 초월적으로 얻어낸 화려하고 섬세한 기법이 탁월하다고 비평 하기도 했는데 저는 전에도 말했듯 작품은 불이 최종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지으며 완성시킨다고 생각한다. 특히 요변접시는 유약과 흙의 밸런스가 깨지면 균열이 생겨 버리게 되는데 어느날 균열과 유약을 이용해 새로운 형태의 자기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됐다.

그래서 수많은 실험속 자기가 터져버리거나 금이 가는 실패를 반복하다 데이터를 얻게 됐고 결국에는 인간이 붓으로 흉내낼 수 없는, 불이 그리는 독창적이고 자연스러운 문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게 됐다. 유럽은 자기중에 접시를 좋아하는데 제가 만들어낸 색깔도 다양하면서 휘황찬란하고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작품들이 풍기는 희소성과 아름다움에 유럽에서 전시회나 초대전을 많이 하게 됐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도자기가 일본에서 전파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만나는 사람들마다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도자기 기법이 오래전부터 전수된 것이고 도자기의 전통 기법은 청자, 백자, 분청사기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졌으며 때로는 기술자를 잡아가기도했고 침략기에는 대한민국의 작품들을 많이 훔쳐가기도 했으며 아직까지도 일본의 기술이나 기법은 대한민국을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앞으로 계획은

▲ 저는 요변기법을 지속적으로 연구개발해 불이 주는 아름다운 색감 연구와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데 더욱 노력할 예정이다. 또한 도자기가 생활 속에 녹아 살아 숨쉴 수 있도록 생활자기의 활성화에 집중할 예정이며 남은 여생을 자기를 만들고 발전시키고 후학들에게 전해주는데 노력할 것이다. 지금처럼 나를 찾는 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많은 이들과 자기 발전을 위해,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지금까지 함께 도자기를 만들어 온 사랑하는 아내와 건강하게 살아가길 희망한다.

NSP통신 김종식 기자(jsbio1@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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