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 정읍 무성서원 전경 (사진 = 정읍시)

(전북=NSP통신) 김광석 기자 =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가 이달 초 ‘한국의 서원’을 알리는 카드 뉴스를 제작해 자체 인스타그램에 배포했다.

카드뉴스는 ‘동아시아 성리학을 창의적으로 발전시킨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을 주제로 한국서원의 특징과 9개 서원의 위치, 서원의 건물과 기능 등을 한국어와 영어로 소개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전국의 서원을 세계에 알린다는 취지다.

올해는 전국 9개 서원이 ‘한국이 서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 지 4년이 되는 해다. 2019년 7월 6일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전국 9개 서원을 ‘한국의 서원’으로 세계유산으로 올렸다.

아홉 개 서원은 정읍의 무성서원을 비롯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도동서원, 경남 함양의 남계서원,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 충남 논산의 돈암서원이다.

한국의 서원’은 조선시대(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 마을 지식인들이 건립한 성리학 교육시설이다. 중국의 서원이 모델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방식으로 발전했다. 중국 서원이 초기 사립학교에서 후에 관학으로 발전하고, 관료 양성이 목적이었다면 우리나라 서원은 처음부터 줄곧 사립 교육기관의 역할을 담당했고,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기능의 역할이 컸다. 특히 출세보다는 올바른 삶의 가치관을 배우고 익히며 학식과 인품을 갖춘 진정한 선비의 품성을 갖춘 인간을 키우고자 했다.

◆최치원 혼 깃든 무성서원... 전북 유일 흥선대원군 서원 철폐령 피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서원을 보면 대부분 경상도 쪽에 위치하고 있다. 전라도에서는 정읍의 무성서원(사적 제166호)과 함께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사적 제242호), 단 두 곳이 포함됐다.

정읍 무성서원은 칠보면 무성리 원촌마을에 있다. 마을 중심부를 가로지르거나, 마을 앞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면 서원이다. 입구에 서면 고풍스러운 현가루(絃歌樓)가 맞고 그 뒤로 강당인 명륜당, 사당인 태산사가 이어진다.

2층의‘현가루’는 2층 누각인데, 문루이자 유식(侑食)공간이다. 여기에 무성서원 건립의 취지와 의미가 담겨 있다. ‘현가’는 공자의 일화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가 노나라 무성(武城)의 현감이 됐는데 예악(禮樂, *禮樂사상은 예와 악으로 사람들을 윤리적으로 교화하여 ‘인’을 실천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보는 공자의 대표적인 사상)으로 백성을 잘 다스렸다. 이에 공자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격려 차 고을을 찾아갔는데 마침 현가지성(絃歌之聲: 현악에 맞춰 부르는 노래)이 들려와 탄복했다고 한다. ‘백성을 잘 다스리려면 서원이 예악을 일으켜 백성과 가깝게 있도록 해야 한다’는 공자의 교화사상을 담고 있다.

명륜당은 마루 3칸이 벽체가 없이 앞뒤가 툭 틔어있다. 때문에 태산사 내삼문의 태극 문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문가들이 “우리 전통 건축미인 '비움의 담백함'을 느낄 수 있는 절묘한 조형”이라고 평하는 구조다. 태극문양이 뚜렷한 내삼문은 제향공간의 정문으로 그 안쪽이 성역이므로 신과 사람이 만난다는 뜻의 ‘내신문(內神門)’이라고도 한다. 한편으로 무성서원 강학공간은 다른 서원과 달리 기숙사인 ‘강수재’가 강당 앞마당을 벗어나 담장 밖에 있다.

사당에는 고운 최치원(857년 ~ ?)의 위패와 초상이 모셔져 있다. 그는 신라 말 태산(지금의 태인, 칠보 일대)의 태수를 지냈다. 무성서원은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생사당(백성들이 감사나 수령의 선정을 찬양하기 위하여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부터 제사 지내는 사당)인 태산사가 뿌리다. 고운이 태산군의 태수로 부임한 886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무성서원은 1천여 년의 시간을 품고 있는 셈이다. 또 하나 특이할만한 것은 무성서원처럼 살아있는 선현을 모신 사당은 드물다.

1615년 서원으로 출발했는데, 태산서원으로 불리다가 숙종 22년인 1696년 사액(賜額)을 받아 무성서원으로 개칭됐다. 고종 5년(1868년) 흥선대원군의 대대적인 서원 철폐령 속에 살아남았던 전라북도 유일의 서원이다. 당시 전국적으로 47개의 서원만 남았는데 전라도에서는 무성서원과 장성 필암서원, 광주 포충사만 헐리지 않았다.

배향 인물도 많다. 고운을 포함 불우헌, 서원 인근에서 활동하던 영천 신잠(1491~1554)과 눌암 송세림(1479~1519), 묵재 정언충(1491~1557), 성재 김약묵(1500~1558), 명천 김권(1549~1622) 모두 일곱이다.

◆지식인들이 지역주민과 함께 사회적 역할을 다한 거점 공간

무성서원은 여느 서원과는 여러모로 차별화된다. 우선 다른 서원이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동네 중심과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면 무성서원은 마을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신분 계급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학문의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했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었으며 지역민 결집의 중심이었다. 마을주민과 지역문화를 선도하며 지식인들이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거점이었던 것.

대표적 인물이 조선 초의 문인 불우헌 정극인(1401~1481, 경기도 광주 출생)이다. 불우헌은 1436년 벼슬에서 물러나 처향(妻鄕)인 태인(그의 묘소와 유적이 현재 칠보면에 소재하고 있으나, 당대의 지명은 태산(泰山)과 인의(仁義)가 합쳐진(1409년 ‘태인현’이었다)에 내려와 교육자로 새 삶을 시작했다. 가사문학의 효시인 ‘상춘곡’은 자연 속에 묻혀 교육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면서 자연 속에서의 삶을 노래한 것이다. 그는 특히 성리학적 질서를 담은 지역자치 규약인 고현동향약(1475, 보물 1181호)을 통해 미풍양속을 권장하고 이웃과의 화목을 권장했다.

이러한 전통이 이어져 나라가 위급할 땐 붓 대신 칼을 들었다. 일제 강점기인 1906년에는 을사늑약에 항거하는 병오창의가 일어났는데, 서원 중 유일하게 항일의병이 일어난 곳이다. 면암 최익현과 둔헌 임병찬이 주도한 이 사건은 호남 최초의 항일 의병운동이기도 하다. 서원 밖 오른쪽 마당에 항일 의병을 기리는 ‘병오창의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교육에서부터 개방과 소통, 평등까지...

최소한의 건축양식을 보이는 무성서원은 흔들림 없이 절개를 지키는 반듯한 선비의 풍모다. 그러면서도 우아한 건축미가 인상적이다.

특히 서원 뒤편에서 내려다보면 모든 건축물의 높이가 같고, 건축물이 폐쇄적이지 않고 마을을 향해 열려 있다. 신분을 막론하고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학문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개방과 평등을 실천했던 그리고 평등과 애민, 겸손을 강조했던 최치원의 사상이 곳곳에 깃들어 있는 무성서원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렇듯 무성서원은 정읍의 정신적, 문화사적 큰 자산이다. 이와 관련, 무성서원을 중심으로 한 유교 수련원도 건립할 예정이다. 빠르면 오는 10월 건축공사에 들어갈 예정인데, 고운 최치원과 불우헌 정극인의 유교사상과 선비문화를 교육‧체험할 수 있는 전통문화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이다. 선비문화 체험과 교육을 통해 윤리의식을 높이고 청소년 인성 함양에 도움을 주는 공간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특히 전통 한옥으로 건립,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문화 체험 시설과 힐링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시는 무성서원을 활용한 사업과 공연ㆍ강좌ㆍ체험 등 다채로운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최치원 사상과 현가루의 풍류를 찾아서’란 주제로 11월까지 최치원과 정극인 등 무성서원의 배향 인물로 알아보는 풍류와 도에 대한 강좌와 ‘최치원과 정극인 관련 유적 답사’를 이어간다.

또 무성서원 본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강학당을 운영하고 서원과 주요 역사 관련 장소를 답사하면서 예절과 다례·사자소학 등을 배우고 체험하는 서원 스테이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무성서원의 가치를 공유하고 지역민의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사계절 화보집 발간이나 전담 해설사 양성, 학술대회 개최도 준비 중이다. 또한 무성서원을 온전히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보존 관리대책에 힘쓰고 있다.

NSP통신 김광석 기자(nspks@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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