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수원 영화동 우시장 모습. (수원시)

(경기=NSP통신) 조현철 기자 = 인구 120만 대도시로 성장한 수원시의 과거 모습은 어땠을까? 자동차가 전국을 뒤덮기전 앞서 한반도를 점령하고 우리 민족과 함께 살아온 한우. 수원 우시장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특별한 전시회에서 만나보자.

‘전국 3대 우(牛)시장’으로 꼽혔던 ‘수원 우시장’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수원 구 부국원’에 6일부터 12월 27일까지 작은 전시 ‘수원 우시장’이 열린다.

수원 우시장의 역사는 정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조대왕은 수원에 화성을 축성하고 신읍치를 건설한 후 수원을 성장시키기 위해 둔전(屯田)을 만들고 농민들에게 소를 나눠줬다고 한다. 소가 점점 늘어나자 수원장에서 송아지가 거래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우시장이 형성됐다.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소를 팔려는 남부 지방 사람들은 서울과 가깝고 솟값이 좋은 수원 우시장으로 몰려들었다.

북수동 우시장(현재 매향여중 건너편)은 해방 이후 영화동 우시장으로 이전했다. 수원 우시장은 영화동 시기가 전성기였다.

수원 우시장은 서울로 반출되는 ‘고기소’가 모이는 ‘중개 시장’의 성격이 강했다. 이에 우리나라 최대의 육류 소비시장인 서울과 인접해 크게 성장했다.

1970년대 후반 수원시 도심이 확장되면서 영화동 우시장은 곡반정동으로 밀려났다. 곡반정동 수원 우시장은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우시장으로 재탄생했지만 축산 유통 구조가 변화하면서 1980년대 이후 쇠퇴했다. 1996년 곡반정동 우시장이 폐쇄되며 수원 우시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수원 우시장은 전국에서 ‘3대 우시장’이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했다. 장날이면 수백 마리의 소와 사람이 모여들었다. 수원역에서 내린 소들은 소 여관인 ‘마방촌’으로 갔다. 상인들의 눈에 띄어야 잘 팔리기 때문에 소는 마방촌에서 단장하고 쉬다가 다음 날 아침 우시장으로 나왔다.

소 거래는 ‘거간’이라고 불리는 중개인과 소 주인의 여러 차례 흥정을 거쳐 이뤄진다. 거래에는 거간, 소 장수와 소상인, ‘앞잡이’ 등 여러 명이 참여한다. 수원 우시장이 열리는 날에는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1979년 수원 곡반정동 우시장 모습. (수원시)

‘수원 우시장’ 전시는 ▲수원 우시장의 역사 ▲소를 사고파는 우시장 사람들 ▲수원 마방촌 등으로 구성된다. ‘전국한우챔피온대회’를 재현한 포토존에서 사진도 촬영할 수 있다.

수원문화원은 수원 우시장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조사·정리해 ‘수원 우시장’을 발간했는데 이번 전시회에서 연구 성과를 공개한다.

수원시 관계자는 “수원시는 도시개발로 사라진 지역의 향토 역사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며 “많은 시민이 ‘수원 우시장’과 전시를 관람하며 옛 수원의 모습을 추억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화~일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입장 마감 오후 5시 30분). 매주 월요일, 법정 공휴일은 휴관하고 무료 관람이다. 주차 공간이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길 권한다.

NSP통신 조현철 기자 hc1004jo@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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