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칠현산 칠장사 전경. (안성시)

(경기=NSP통신) 배민구 기자 = 경기도 안성에는 유서 깊은 고찰들이 여럿 있다.

신라 문무왕 20년 고승 담화덕사가 창건하고 고려시대 혜거국사가 크게 중수한 서운산 동북쪽 기슭에 자리한 금광면의 석남사, 신라 선덕여왕 5년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고려 현종 5년 혜소국사가 크게 중창한 죽산면 칠현산에 자리한 칠장사, 병자호란 때 의병 천여 명이 은신해 목숨을 구했다는 원곡면 천덕산 자락에 푸른 안개와 함께 자리해 이름 붙여진 청원사, 고려 원종 6년 명본국사가 창건하고 대장암이라 했으나 고려 공민왕 13년 나옹화상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봤다 해서 이름이 바뀐 서운면 서운산 자락의 청룡사가 그 것이다.

세월에 걸맞게 저마다 전설과 유적을 간직하고 있지만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얘기처럼 푸근하고 정겨운 전설과 역사를 품고 있는 절을 꼽자면 칠현산 칠장사가 으뜸이다.

먼저 유적만 보더라도 칠장사에는 인목대비가 승려 법형을 시켜 5년에 걸쳐 그리게 해 하사했다는 국보 제296호의 오불회괘불탱을 비롯해 보물 제1256호인 삼불회괘불탱, 보물 제488호인 혜소국사비, 보물 제983호인 봉업사 석불입상 등 국보급 유적 외에도 인목대비 친필족자, 죽림지 삼층석탑, 당간지주 등 많은 유적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수많은 발길이 칠장사를 찾는 이유는 따로 있다. 천년의 역사와 함께 고이고이 전해온 아름답운 전설 속 교훈과 깨달음을 주는 가르침 때문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오불회괘불탱, 삼불회괘불탱, 봉업사석불입상, 인목대비친필. (안성시, 배민구 기자)

칠장사는 이름에 얽힌 전설부터 남다르다. 현재 칠현산의 옛 이름은 아미산이었는데 한 도둑이 샘을 찾다 눈부신 샘물을 발견하고 정신없이 먹다보니 금바가지로 변해 있었다.

재물에 탐이 난 도둑이 집으로 가져와 동료인 여섯 도둑에게 얘기를 전하고 보니 돌덩이로 변했다. 크게 놀란 일곱 도둑들은 칠장사의 혜소국사를 찾아가 이실직고하고 사죄하자 혜소국사가 이들을 출가시켜 열심히 수행케 해 결국 나한의 경지에 이르렀다.

세월이 흘려 스승인 혜소국사가 입적하자 슬픔에 잠긴 일곱 나한도 함께 사라져 절 뒤편 너럭바위 위에 사람 형상을 한 일곱 개의 돌멩이로 변했다. 이때부터 아미산을 칠현산(七賢山)으로 칠장사(漆長寺)를 칠장사(七長寺)로 고쳐 불렀다.

칠장사가 나눔 실천을 하며 자비실천도량을 표방하는 데는 천년대선사인 혜소국사의 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혜소국사의 비문에는 “개성 광제사 문 앞에 솥을 걸어놓고 밥 짓고 국 끓여 굶주린 이들을 대접하는 데에 일천의 곳간을 비워도 좋다 백 섬의 곡식을 베풀지라도 아끼지 않았다”는 글이 남아 있다.

칠장사가 굶주린 백성을 구제한 혜소국사의 가르침에 따라 매년 10월이면 혜소국사 추모 다례제를 올리며 나눔행사를 펼치는 까닭이다.

칠장사에는 백성들의 처지를 어루만져주고 구제해 준 또 한 명의 선사(禪師)가 있다. 임꺽정이 스승으로 모셨다는 병해대사다.

갖바치 출신의 병해대사는 백성들에게 가죽신 만드는 법을 가르쳐 생계를 잇게 해주고 아픔을 같이 해 살아있는 부처로 불렸다.

이런 병해대사가 입적하자 스승의 죽음을 슬퍼한 임꺽정이 나무를 직접 깍아 불상을 만들고 극락전에 모셨는데 이 불상이 꺽정불이다.

병을 낫게 해주고 자손을 보게해 준다고 해 불공을 드리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 꺽정불 하단에는 봉안 임거정이라고 쓰인 삼베조작이 붙어 있어 임꺽정에 얽힌 전설을 역사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사람 형상을 한 일곱 개의 돌메이가 놓여 있었다는 너럭바위와 일곱나한이 모셔져 있는 나한전, 혜소국사비, 임꺽정이 나무를 깍아 만들었다는 꺽정불(가운데). (배민구 기자)

칠장사를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수험 기도사찰로 이름이 났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어사 박문수의 뭉중 등과시(夢中 登科詩)인 낙조(落照)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주말이면 전국 수험생 부모들이 칠장사 나한전에 들러 유과는 물론 초코렛과 과자 등을 올리며 기도를 올린다.

어사 박문수가 가난한 집안에 홀어머니 밑에서 과거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진 삼수생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 번째 과거시험을 치러 한양길에 오른 박문수가 어머니의 신신당부로 칠장사 나한전에 들러 찹쌀유과를 꺼내 놓고 기도를 올린 뒤 하루밤을 묵었는데 꿈에 나타난 나한이 7행의 시를 읊어줘 여기에 마지막 1행은 시험장에서 완성해 마침내 장원급제했다는 전설이다.

해마다 10월이면 칠장사에는 어사 박문수 전국 백일장이 열린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이번 백일장은 19일 열리며 백일장, 명사초청강연, 한복모델경연, 아이돌 공연 등이 펼져진다.

이 외에도 칠장사에는 인목대비에 얽힌 일화와 유적이 남아 있고 궁예가 칠장사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활연습을 했다는 설화가 전해 온다.

대웅전의 고색창연 빛 바랜 단청과 울긋불긋 칠현산 단풍이 어우러진 이 계절 안성 칠장사를 찾아 무거워진 몸과 마음을 덜어내고 주지 스님과 차 한잔 해본다.

나눔을 실천하는 자비실천도량 칠장사의 주지 지강 스님이 역사 속 이야기들이 일깨워 주는 가르침에 한 말씀 거드신다. “불교는 믿는 게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지”

NSP통신/NSP TV 배민구 기자, mkbae@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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