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역 4번출구 뒷골목에 위치한 아이리쉬 펍 스윔굿(Swimgood). 기와을 얹은 한옥에 유럽감성을 녹여낸 독특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스윔굿 제공)

(부산=NSP통신) 차연양 기자 = ‘차연양의 명소 탐방 정복기(차연양의 명탐정)’에서는 영남지역 곳곳의 숨은 명소를 소개하고 그 속에 녹아든 주인공들의 철학과 이야기를 전한다. 누군가에게는 생업이고 누군가에게는 신념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인생이기도 한 생생한 현장에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들어본다.<편집자 주>


‘먹는 즐거움’은 어느새 많은 이들에게 행복의 기준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SNS나 브라운관 속에는 온통 ‘맛있는 음식’을 찬양하는 콘텐츠가 넘쳐나고, 한여름 찜통더위든 한겨울 칼바람 속에서든 대쪽 같은 곧은 의지로 맛집 줄을 기다리는 인파는 이젠 특별할 광경도 아니다.

맛있는 음식은 많고 많지만 이를 어떻게 즐기느냐가 요즘 사람들의 또 다른 관심사로 떠올랐다.

음식을 더욱 맛있게 하는 것은 살포시 곁들이는 알코올이요, 술과 음식으로도 채울 수 없는 틈을 완벽하게 메우는 것이 음악임에 이의가 없다면,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말 것.


◆ 왁자지껄한 ‘술집골목’ 속 ‘비현실’ 같은 공간, 스윔굿.

부산의 대표 번화가 중 하나인 동래 지하철역 뒷쪽 1번가 골목.

흥 오른 목청과 알딸딸한 발걸음들로 정신없는 골목 중심부에서 살짝 벗어나면 특이한 자태로 홀로 서있는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기와를 얹은 것이 분명 한옥인데, 투명한 유리벽 너머 은은한 조명은 유럽냄새를 풍긴다.

‘한옥 속의 아이리쉬 펍(Irish Pub)’, 부산 동래구 소재 스윔굿(Swimgood)은 아일랜드 풍 음식과 다양한 술,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의 곡에서 영감을 받아 지어진 이름, ‘swimgood’. 강렬한 비트에 상반되는 애절한 멜로디가 가게 분위기와 닮았다.

기와를 받치는 직선의 철제들은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따뜻한 커피처럼 부드럽고 포근하다.

한옥과 컨테이너 박스가 작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이어진 독특한 구조, 흐릿하게 하늘이 보이는 불투명 복도 천장이 낭만을 더한다.

스무 발자국 전까지 왁자지껄한 ‘동래 술집골목’이었는데, 마치 다른 곳에 온 듯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스윔굿 지영훈 사장은 포근하고 세련된 가게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구석구석 신경을 쓴다. 테이블마다 생화를 꽂은 화병과 향초가 눈길을 끈다. 조명은 살짝 어둡게 조절해 함께하는 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고. (스윔굿 제공)

테이블마다 놓인 화병과 향초의 불빛, 그것과 같은 색으로 공간을 밝히는 은은한 조명들, 그 따뜻함 사이로 가을 저녁의 서늘한 공기가 흐르고 재즈 선율이 분위기를 아우른다.

술을 마시는 이들은 조곤조곤 여유로워 보이고, 그들을 지켜보듯 벽면 이곳저곳에는 그림들이 걸려있다.


◆ 음악을 가장 흥겹게 만드는 것은 ‘술과 음식’이라는 촉매.

음악을 사랑하고 버스킹을 즐기던 청년이 마음껏 공연을 하고 싶어 꾸린 곳이 바로 이곳.

단정하게 셔츠를 걸쳐 입은 스윔굿 지영훈 사장은 이곳이 단순한 가게가 아닌 아티스트들의 아지트로 자리매김하길 바라고 있다.

‘문화도시’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부산은 “아티스트들이 돈을 내고 무대에 서야한다”고 할 정도로 문화예술 공간이 부족하다.

“부산의 예술인들은 해봤자 길거리거든요. 그마저도 주변 상인들 눈치 보랴 여의치 않고.. 작은 공간이나마 마음 놓고 공연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어요.”

스윔굿에서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무대갈증’에 허덕이는 부산의 인디 뮤지션들이 공연을 꾸리고 있다.

윗줄은 왼쪽부터 인디 뮤지션 혼자노는양, 리미티드 뮤직, 소년 민의 공연 모습.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무대를 필요로 하는 뮤지션들이 연주와 노래로 스윔굿을 가득 채운다. 또한 스윔굿에서는 부산 연고 아티스트들의 그림을 구입해 벽면을 채우고 있다(사진 아랫줄). (스윔굿 제공)

그렇다고 거창할 것도 없다. 도대체 어디서 공연을 하느냐 물었더니 “여기에서요~”라며 매장 한 편을 가리킨다.

작은 귀퉁이에서 공연을 하면 음식과 술을 즐기던 사람들이 의자를 돌리고 고개를 젖혀 무대를 바라보는 것이다.

요일을 잘못 선택해 공연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곳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이어오며 두터운 팬층까지 확보하고 있다는 인디가수 ‘혼자노는 양’은 “스윔굿에서 공연을 하는 것은 친구들에게 제 노래를 들려주는 느낌에 가깝다”며 “내가 만든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맛있게 먹어줄 때와 비슷한 기분”이라고 말한다.

스윔굿을 ‘우연을 가장한 운명의 가게’라 칭하는 그는 “이곳에서 평생 봐도 좋을 친구들을 많이 만났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할 것”이라며 “스윔굿은 사랑”임을 강조했다.

백번 공연을 한들 보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스윔굿이 머릿속에만 있었을 때 지영훈 사장은 관객이 공간에 머물 수 있는 구실을 고민했다.

결론은 ‘맛있는 음식’만한 것이 없더란다. 여기에 음식을 더욱 맛있게 하는 술 한 모금은 흥분을 행복으로 급전환시키는 촉매가 된다.

3년간 호주에 머물면서 아일랜드 풍 요리를 배운 경험도 있겠다, 주변에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도 많겠다, 그런 참에 마침 발견한 곳은 즐비한 술집 틈에서 독특한 모양새로 서있는 독채.

한 눈에 마음을 뺏긴 지영훈 사장은 고민할 것도 없이 ‘복합문화공간’이라는 다소 거창한 꿈을 이곳에 옮겨놓기 시작했다.

메뉴를 갖추고, 살림을 꾸리고, 항상 이른 아침 꽃시장에서 사온 생화를 꽂아 테이블을 장식할 만큼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쓴다.

“모든 조명은 철저하게 조도와 명도가 계산됐다”며 진지한 얼굴로 농담을 던지는 지영훈 사장. “약간 어두워야 눈앞에 있는 것들에 집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음악쟁이’ 뿐 아니라 ‘그림쟁이’들도 스윔굿 세간에 보탬이 된다.

벽면을 장식하는 그림들은 모두 부산의 예술가들에게서 구입해 걸어두고 있다.

흥 많은 사장 덕에 이곳에서는 일 년에 한두 번 파티도 열린다고 한다.

지난 5월 19일 개업 1주년 파티가 나름대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예술인이 함께 자리한 먹고 즐기는 축제였다고.

할로윈과 크리스마스에도 파티가 계획돼 있다. 북적북적한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면 꼭 들러달라고 지영훈 사장이 벌써부터 신이 난 채 얘기한다.


◆ 깊어가는 가을밤, 지금 이 순간 가장 어울리는 메뉴는?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하고 있는 스윔굿 지영훈 사장. 각자의 취향에 맞는 주문을 하고 싶다면 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 오른쪽 아래는 기자를 위해 말아준(?) 헨드릭스 진 토닉. 청량한 오이향이 아주 기분좋은 메뉴다. (스윔굿 제공)

이곳은 와인이나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간단한 안주 뿐 아니라 파스타, 그라탱 같은 식사메뉴도 맛볼 수 있다. 여성들이 좋아할만한 예쁜 플레이팅이 마음에 든다.

스윔굿은 가을이 찾아오면서 와인에 주력하고 있다.

하우스와인 ‘산타헬레나 버라이어탈 까베르네 소비뇽(Santa Helena Varietal Cabernet Sauvignon)’은 한국인 입맛에 가장 무난하게 맞는 칠레산 와인이다.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달달한 과즙향을 느끼며 가볍게 즐기기 좋았다.

찰랑거리는 잔 속 와인 위로 노란 불빛이 비치고 고개를 들어 바라본 불투명 유리 천장에는 달빛이 어린다. 달콤하게 넘어간 뒤 남는 쌉싸래한 여운이 “가을엔 와인”을 내건 이유를 설명한다.

지영훈 사장이 추천하는 쪽은 ‘안델루나 1300 말벡(Andeluna 1300 Malbec)’. 아르헨티나 최고지(最高地) 투풍가토의 1300m 고지, 매우 넓은 폭의 기온차 속에서 자란 포도로 만들어져 맛이 깊고 진하다고.

확실히 전자보다 풍부하고 무거운 느낌이다. 와인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가성대비 훌륭하다는 이 ‘추천와인’을 선택해볼 것.

와인 반잔에 살짝 올라간 체온이 스산한 가을바람과 대비되며 스피커 너머 리듬을 더욱 흥겹게 만든다.

저녁이 깊어지자 금세 테이블이 꽉 찼다.

둘러보니 의외로 고객층에 대중이 없는 듯 했다. 젊은 여성 고객들은 물론, 두 남성이 마주앉은 테이블, 모임을 즐기는 40대 테이블도 눈에 띈다.

상기된 표정으로 자리를 즐기는 한 40대 여성은 “술을 못하지만 와인은 조금씩 즐기는 편인데, 지나가다 문 앞에 있는 와인병들이 눈에 띄어서 와본 것이 단골집이 됐어요. 모임이 있을 때마다 일행들에게 꼭 여기 오자고 제안을 하죠. 사실 술보다는 분위기에 취하려고 오는 거예요”라며 소녀 같은 얼굴로 말한다.

스윔굿에는 가요, 팝, 재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와인이 재즈와 딱 떨어지게 어울렸다면, 가벼운 비트의 팝이 흘러나오니 지영훈 사장은 음악에 맞는 칵테일 한잔을 ‘말아왔다(?).’

단 맛의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기자의 취향에 맞춰 상큼한 오이향이 후각을 자극하는 헨드릭스 진(Hendrick’s Jin)에 토닉워터를 섞어 만든 메뉴다.

와인의 묵직함 직후 톡 쏘는 칵테일로 입가심했더니 청량함이 손가락 끝까지 뻗는 듯 했다. 생음악이 없는 것이 더욱 아쉬워지는 순간.

좀 더 추워지면 군고구마도 구워서 서비스로 내놓을 계획이란다. 담요를 덮고 후후 불며 먹는 군고구마에 막힌 목을 적시기 위해 보드카를 홀짝이는 상상을 하니 미리부터 행복해진다.

깊어가는 가을, 쓸쓸함은 밀려오는데 받아줄 이라곤 없거나, 늘 비슷한 데이트에 무료해졌을 때, 술만 잔뜩 퍼먹는 시끌벅적한 모임에 염증을 느낀다면 ‘날’ 잡고 부산 동래역 뒷골목 스윔굿을 찾아보자.

이왕이면 그 ‘날’은 금·토요일로 잡길 강추.

맛있는 음식과 술, 그리고 실력파 부산 뮤지션들의 생생한 라이브 음악이 어우러진 근사한 가을밤을 만끽할 수 있을테니.

(스윔굿 제공)

NSP통신/NSP TV 차연양 기자, chayang2@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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