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NSP통신) 유아예능, 리얼예능, 관찰예능이 TV프로그램을 장악하면서 쌍둥이 부모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송일국의 세 쌍둥이 아들 대한 민국 만세의 재롱을 볼 때마다 송일국보다 그 아들들이 더 인기를 얻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나 역시도 민국이의 깜찍한 애교로 엄마미소가 절로 지어지게 되니까 말이다.
쌍둥이도 버겁다는 육아에서 세 쌍둥이를 키우는 것이 우리모두가 대단하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세 쌍둥이보다 더 놀라게 한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다. 2주전부터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합류하게 된 오둥이 아빠 축구선수 이동국이다. 딸 쌍둥이를 연이어 낳더니, 얼마전 100일도 안된 아들까지 낳게 돼 이동국은 다섯아이의 아빠가 됐다.
다섯 아이를 키우는 축구선수 이동국은 어떤 모습일까? 이런 궁금증으로 집중해서 시청하게 됐는데, 나는 그만 뜻하지 않은 장면에 눈물이 고이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게는 남다른 한 장면 속에 딸과 대화를 나누는 이동국의 말들이 가슴을 울렸기 때문이다.
“파이팅 에서 넌 이미 지고 있어!” “운동을 덜 한 것 같다. 소원이 왜 없느냐? ‘운동 하루 쉬게 해 주세요’라고 해야지” “나중에 커서 우는 것은 지금 우는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많이 울어 놔야지 나중에 웃는 날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동국의 유전자를 듬뿍 받은 쌍둥이 중 둘째 딸 9살 재아는 현재 테니스 선수다. 이 더운 땡볕에 그 무거운 라켓을 들고 공을 향해 뚫어져라 쳐다보며 비 오듯 땀 흘리는 재아의 훈련모습을 보니 유년시절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나도 이동국 같은 멋진 스포츠인이신 아버지 밑에 자란 딸답게 운동신경이 남달라 각종운동의 소질을 보였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통틀어 3년이란 시간을 누구보다 맹목적이며 격하게 운동 선수로 뛴 경력이 있다. 단체, 구기종목보다는 수영, 육상, 볼링, 골프 등 개인스포츠에 더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육상선수시절, 경상남도 지역 내에서 각광을 받았던 나는 멀리뛰기, 400m의 종목의 전문선수로 각종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내가 어떻게 그 많고 독한 훈련강도와 시간을 이겨냈을까 스스로가 놀랍다. 어릴 때 독하게 했던 운동 때문에 지금도 기초대사량도 높고 단기체력도 평균여성들보다 나은 편이다.
새벽4시부터 시작한 운동은 심야야간운동까지 하루에 4~5회 이상, 매일 12시간씩 운동하는 독한 훈련강도를 스스로 이겨냈기 때문이다. 지금도 등산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때의 강도높은 훈련 때문이리라. 그냥 오르고 내리는 것도 힘들다는 등산코스를 다리근력과 민첩성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타이어를 허리에 맨 상태로 하루에 3시간 이상을 뛰어다녔고,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달고 하루 종일 몇 달 동안 먹고 자고 생활을 했으며, 복근운동도 하루에 300개 이상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같은 동료들 속에서도 뛰어난 기록이 있어야 나갈 수 있는 전국대회 출전권한이 있었기에 같은 동료들과의 눈에 보이는, 아니 보이지 않는 경쟁도 엄청났다. 그래서 나는 새벽 4시 기상에 삼십 분을 더 당겨 일어나 침대난간에 발을 걸어 복근운동을 하곤 했다. 결국 나는 그 해 같은 동료들 중 나만 전국대회 출전권을 가지게 됐다.
지금도 독한 강도의 훈련을 이겨낸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자랑스러운데, 나보다 더 신념이 두터운 분이 계신다. 그 분은 다름아닌 나의 아버지이다. 모든 주변지인은 물론이고 30년을 넘게 보고 자란 내가 산 증인이듯 나의 아버지는 정말 신념이 대단한 스포츠인이다. 물론 전문 선수이시기 보다는 아마추어 선수셨지만 훈련강도, 훈련집념은 태릉선수촌 국가대표들보다 더 못지 않다고 자부한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하셨지만 집안환경이 여의치 못해 좋아하는 걸로 그쳤다가 결혼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처음 시작한 운동은 테니스였다. 내가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부산시내에서 알아주는 테니스아마추어 선수였고 그때도 역시 많은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었다. 다음으로 시작한 스포츠는 멘탈 스포츠 중 난도가 가장 높은 골프였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늦게 시작한 것이 무색할 만큼 얼마 가지 않아 클럽 챔피언만 3연패를 했고,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등 각종 골프대회에서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덕분에 본가에는 트로피 장식장에 트로피가 한 가득하다.
내가 지금껏 본 아버지는 지금껏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4시에 어김없이 일어나시는 분이다. 홀로 어두컴컴한 새벽에 나가 비가오나 눈이오나 본인이 약속한 훈련을 꼭 하고 돌아오시고, 시합이 있을 때 평소보다 더 많은 훈련을 스스로 스케줄을 짜서 훈련하신다.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으시고 연세도 있는편이라 시합을 안 나감에도 불구하고 새벽운동은 여전히 하고 계신다. 그리고 또 빠지지 않는 훈련 한가지. 퇴근하고 돌아오시면 매일 200개가 넘는 복근운동과 스쿼트 운동을 하신다. 거실에 있는 바를 정(正)자 메모지가 있는데 한 세트씩 할 때마다 한 표기씩 해놓으신다. 그 작게 작게 쓰신 바를 정자 메모지가 지금 몇 년이 지났는지 모른다. 우리 가족 모두 아버지의 자기관리에 그 신념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한결같이 본인과의 약속, 본인과의 훈련강도를 빠지지 않고 하시다니... 그러니 그 독하고 험한 운동세계에서 최고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지보다 나는 훨씬 좋은 조건에서 운동을 했고 좋은 신체조건을 가졌지만 아버지만큼 신념이 두텁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아버지는 더 악한 조건에서도 언제나 최고의 위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신 분 아니시던가?
중학교 2학년 어느 시장기 육상경기대회, 아버지께서 경기장으로 몰래 응원하러 오셨다. 예선, 본선을 거치고 마지막 결승 레인에 바짝 긴장하고 선 내게, 오실 거라 예상하지 못한 아버지의 등장. 아버지는 나를 보며 “송경화!!!”라는 한마디를 크게 하시고 내 눈을 바라보셨다. 그게 아버지만의 응원이였던것 같다. 놀란 나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 시야가 뿌연 상태로 달린 것 같다. 아버지가 보고 계신데 더 잘했어야 하는데 아버지의 “송경화!” 한마디는 되려 날 더 가슴 졸이게 만들어서 그날 매우 형편없는 성적으로 아버지에게 경기가 끝나고 혼난 기억이 있다.
축구선수 이동국이 9살 된 딸과 한 테니스시합에서 한 점도 져주지 않고 승부의 세계를 펼치고 결국 아빠에게 지고 만 딸 재아는 아빠 앞에서 펑펑 울분의 눈물을 흘리는데, 어찌나 나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되는지... 경기 중간에 지고 있는 딸 재아에게 이동국이 “재아야 힘내! 파이팅!” 재아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파이팅”하니 이동국이 바로 받아 치며 하는 말이 “넌 파이팅 에서 이미 졌어! 더 큰소리로 안 해??”라고 훈육한다. 어릴적 같은 스포츠인으로 혹독한 운동세계에 있었던 아버지와 나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피식 웃음도 나고 훌쩍 눈물도 나는 대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와 나는 서로만 통하는 동질감, 전우애가 있는 듯 하다. 혹독한 훈련을 이겨낸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어찌됐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버지보다도 훨씬 더 약한 신념을 가진 것 같다. 아직도 우리 아버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운동을 가고, 퇴근한 뒤에도 복근운동을 여전히 하시기 때문이다. 그런 집념과 강한 정신력으로 본인관리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건강과 평화, 그리고 아버지 스스로도 많은 스포츠업적까지 남기신 것 아닐까?
잠시 피폐해진 내 정신을 가다듬어 보자. 우리 아버지의 집념과 잠시 망각한 내 집념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무더운 여름 따위조차 무섭지 않은 ‘인간의 집념’보다 더 강한 게 어디 있을까? 우리 모두 강한 정신력과 집념으로 본인의 뜻한 바 무엇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파이팅!! 목소리에서부터 지면 안 된다!! 이동국의 말이 다시 귓가에 들려온다.
◆ 송경화 NSP통신 칼럼니스트는 목원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LG전자에서 사내교육을 담당했다. 현재는 송경화기업교육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송경화의 맛있는 스피치 아카데미 대표와 목원대학교 외래교수 등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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