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NSP통신) 차연양 기자 = ‘차연양의 명소 탐방 정복기(차연양의 명.탐.정)’에서는 영남지역 곳곳의 숨은 명소(명물)를 소개한다. 또한 그 속에 녹아든 주인공들의 철학과 이야기를 전한다. 누군가에게는 생업이고 누군가에게는 신념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인생이기도 한 생생한 현장에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들어본다.<편집자 주>
대학가를 가득 메운 수많은 매장들이 증명하듯 요즘 젊은이들은 참신한 아이템으로 무장한 프랜차이즈 매장을 주로 찾는다. 부산 속 젊음의 거리, 부산대 앞도 예외는 아닐 것.
깔끔한 분위기와 독특한 아이템을 내세운 프랜차이즈 매장들의 화려한 네온사인 틈에서 소심하게 이름을 내걸고 있는 간판 하나가 눈길에 걸린다.
‘껍사랑 목사랑’이라는 이름처럼 다소 촌스러운 모습으로 골목 안에 쑥 들어가 있는 이 곳, 한 번도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부산대 맛집 중에 맛집이라고.
포근한 눈웃음이 닮은 부부가 둘이서 운영하고 있는 부산대 앞 ‘껍사랑 목사랑’은 돼지목살과 껍데기, 두 가지 메인메뉴만을 내걸고 있다.
‘국민메뉴’ 삼겹살에 비해 퍽퍽하다고 느낄 수 있는 목살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부위.
두꺼운 목살을 삼겹살보다도 부드럽고 풍부하게 맛 볼 수 있는 것이 이곳의 인기비결이다.
둥근 철판테이블에 플라스틱 의자, 향수 속에 존재하는 ‘예전 느낌’을 물씬 풍기는 내부 분위기가 정겹다.
퇴근 후 고단함을 달래줄 밥집, 기분 좋게 한잔 걸칠 수 있는 술집. 어느 쪽이든 운치 있다.
그보다도 인상 깊은 것은 7000원 저렴한 가격에 비해 내어지는 고기가 매우 실하다는 점. 두툼한 것이 스테이크용 고기 같다.
이곳은 제주도에서 건너온 ‘제주촌 포크’의 생목살만을 취급한다.
메뉴판에 적힌 130g보다는 아무래도 무게가 더 나갈 것 같아 물어보니 스테이크용으로 두껍게 썰린 고기여야 하기 때문에 중량 맞추기가 어려워 숫자에 신경 쓰지 않고 넉넉하게 내놓는다고.
빛깔 좋고 두툼한 고기가 불판에 올라가니 더 먹음직스럽다. 특히 이곳 고기는 사장이 직접 구워줘야 극대화된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만의 노하우가 맛을 좌우하기 때문.
집게로 고기를 잡고 계속 불판에 ‘탁탁’ 턴다. 이유를 물으니 고기 기름이 떨어지면서 숯에서 불이 확 올라와 숯향이 물씬 베이게 하기 위함이란다.
때문에 기름이 많아 자칫하면 불이 붙고 연기가 많이 나는 삼겹살은 취급하지 않는 것.
'껍사랑 목사랑'에서 사용하는 ‘야자수 숯’은 고기 속에 짙게 베여 맛을 훨씬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 겉이 노릇노릇 익어도 자르지 않고 잠시 놓아둔다.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스테이크로 따지면 ‘레스팅(resting)’ 과정에 해당하는 것이다.
뜸을 들인 후에 쓱싹쓱싹 고기를 자르니 뽀얀 속살에 발그레한 육즙이 가득 스며있다.
집게로 다정스레 놓아주는 큼지막한 고기 한 점. 하도 군침이 돌아 후후 불지도 않고 입안으로 바로 가져가게 된다.
사장이 구워야 한다는 말, 고기를 먹어보니 과연 이해가 된다. 지금까지 먹어왔던 목살의 맛과는 확실히 다르다.
야자수 숯향을 가득 머금어 풍미가 살아있는 것은 둘째 치고 너무나 부드럽다. 제법 큰 조각을 입에 넣었는데도 씹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고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다.
함께 나오는 양념간장에 찍어 먹으면 더욱 맛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맛.
여기에 이곳의 또 다른 메뉴, 껍데기 또한 별미 중에 별미다.
“저는 껍데기 먹으러 여기 옵니다. 깔끔한데도 은근히 깊은 맛이 느껴지는 것이 제일 좋아하는 술안주지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소매까지 걷어 올린 직장인 이영민(42) 씨는 기분 좋게 술잔을 비운 뒤 젓가락을 바삐 움직인다.
껍데기의 경우, 사장이 오랜 연구 끝에 개발한 ‘매콤한 맛, 고소한 맛, 달콤한 맛, 깔끔한 맛’의 소스로 네 가지 맛을 맛볼 수 있다.
거북할 수 있는 껍데기에 허브, 한약재 등을 넣어 만든 각각의 소스로 잡내를 잡아 쫀득쫀득한 식감에 다양한 맛까지 더한다.
'껍데기는 밖으로 반출이 안 된다'고 메뉴판에 적혀 있는 이유, 오랜 연구에 대한 자부심이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 호들갑을 떨어대니 사장은 특별한 재주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겸연쩍게 말한다.
최고 품질의 제주도 생 목살과 국내산 껍데기, 텃밭에서 직접 키운 상추만 소박하게 내놓는 쌈 접시.
식사는 주문과 함께 갓 지은 고슬고슬한 쌀밥과 구수한 된장, 김장김치와 집 반찬이 차려지기 때문에 40분 전에 주문해야 한다.
양념이 강하지 않은 멸치국수도 고기 먹은 후에 곁들이기에 시원하고 깔끔하다.
식사상은 가짓수가 많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차림이 정성스럽다. 쌀밥을 마른 김에 싸서 양념간장을 얹어 입에 넣고, 찌개 한 숟갈을 떠먹으니 꼭 ‘집밥’을 먹는 기분.
대학생 제원우(26) 씨는 “집이 경북이라 학교 앞에서 자취 중인데 이곳에 오면 고기도 너무 맛있지만 특히 밥이랑 반찬이 엄마가 차려주는 것 같아 배가 터질 것 같아도 꼭 먹고 간다”며 연신 크게 뜬 밥숟갈을 입에 넣는다.
맛있는 고기와 껍데기를 먹고 집밥으로 마무리하는 간단한 코스지만 맛이 이어지는 과정이 군더더기 없다.
“주위에서 손맛이 좋다는 말도 많이 하고 제가 입맛이 까다롭기도 해서 음식 내는 것은 자신있었습니다. ‘정직함으로 승부하자’ 하고 겁없이 시작한 일이었는데 손님을 상대하고 식당을 꾸려나가는 것은 상상 이상이더군요.”
줄곧 건축 관련업에 종사하다 6년 전 돌연 장사를 결심한 사장 부부는 처음해보는 고된 식당일에 초반 몇 년간은 살이 10kg 가까이 빠졌었다고 한다.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여유가 생겼지만, 땀을 뻘뻘 흘리고 정신없이 일을 하더라도 직원을 뽑지는 않는다.
인건비의 문제가 아니라 워낙 깐깐하고 유난스러워 본인들 손이 아니면 성에 차지 않아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하는 건축일보다도 손님 입에 들어갈 음식을 내놓는 식당일이 몇 배는 까다로워야 한다고 믿는 이들 부부.
맛집이라며 지인들 손을 끌고오는 단골손님들과의 끈끈한 유대를 위해서 가격도, 재료도 처음 그대로를 유지하며 오로지 정직만을 내걸었다.
눈에 띄지 않는 골목 안에 숨어있는 ‘껍사랑 목사랑’. 화려한 불빛의 향연과 지나는 청춘들 틈에서 소박하게 반짝이고 있는 이곳의 간판을 발견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들어가 보길.
젊은이들에게는 정성껏 밥상을 차리는 ‘엄마’가, 중년들에게는 그 옛날의 ‘향수’가 떠오르게 하는 이곳.
맛있는 한 끼 식사, 좋은 사람과 낭만을 담아 기울이는 한잔 술이 오늘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NSP통신/NSP TV 차연양 기자, chayang2@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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