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NSP통신) 김오현 기자 =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있지만 그중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인물이 바로 석주 이상룡 이다.
석주 이상룡은 1858년 안동 임청각에서 태어나 유학자로서 구한말 항일의병운동에 적극 가담하고 이후 협동학교 설립에 참여하여 애국계몽운동에 힘쓰던 이상룡은 1910년 8월 일제에 의해 국권이 피탈 당하자, 1911년 1월 54세의 나이로 50여 명의 가솔과 함께 재산을 처분해 마련한 독립운동자금을 들고 만주로 망명했다.
망명 후 서간도 지역에 항일 독립운동단체 경학사를 만들고,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이 되는 신흥강습소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하고 독립정신을 일깨웠다.
그는 망명 전 “공자·맹자는 시렁 위에 두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다”며 독립운동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고, 사당에 모신 조상 신주를 땅에 묻으며 독립 전에는 귀국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1925년 임시정부가 국무령제로 바뀐 후 초대 국무령을 지냈으나 분열된 독립운동계에 회의를 느끼고 다시 간도로 돌아와 무장항일투쟁에 심혈을 기울였다. 석주 이상룡은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독립전쟁에 열정을 바친 숭고한 삶을 살았으나,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2년 5월 지린성 서란에서 순국했다.
석주 이상룡이 태어난 곳은 영남산 기슭 비탈진 경사면을 따라 지어진 전통한옥 ‘임청각’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1519년에 지은 가옥으로, 이상룡을 포함해 아들과 손자 등 11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임청각’은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을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라는 시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99간의 기와집이었다고 알려진 임청각은, 민가로서는 워낙 규모가 커 ‘도깨비가 세운 집’이라는 전설도 전해지며,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 중앙선 철도 부설로 인해 일부가 사라져 현재의 규모로 줄어들었다.
안동시와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은 철도 부설로 훼손되기 이전의 임청각과 그 주변을 옛 모습에 가깝게 복원‧정비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허주 이종악의 ‘허주부군산수유첩’속 그림인 ‘동호해람’, 1940년을 전후해 촬영된 사진과 지적도 등 고증이 가능한 자료를 근거로 2018년 종합적인 복원‧정비 계획을 마련했다.
중앙선 철로 이전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이번 임청각 보수‧복원사업은 총사업비 280억 원을 투입해, 재현가옥 2동을 복원하고 철도개설로 훼손된 임청각 주변 지형과 수목을 재정비한다.
임청각 진입부에는 석주 이상룡의 독립정신을 기리고 그 뜻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임청각 역사문화공유관을 건립하고, 주차장, 산책로, 소방시설 등 관람‧편의시설도 재정비할 계획이다.
임청각 보수‧복원사업은 광복 80주년을 맞는 2025년 완공 예정이며, 시는 사업완료 후‘나라가 없으면 가문도 개인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신념으로 평생을 조국 독립에 헌신한 석주 이상룡의 정신과 삶의 향기를 전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권기창 안동시장은 “올해로 광복절이 제79회를 맞았다. 일제로부터 국권을 찾은 지 8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서야 임청각을 복원할 수 있게 됐다”라며 “독립운동의 성지 안동, 그중에서도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임청각의 완전한 복원은 우리 민족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또한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독립운동가들이 더는 잊힌 영웅으로 남아있지 않도록 안동시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NSP통신 김오현 기자(kimoh600@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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